‘117년전 그때 그시절’ 영상

부두 인부 동선·화물 종류 확인

日거주지 목조 가옥 대량 건설

항만 확장 공사 과도기 풍경도

인천시가 22일 공개한 117년전 인천항(당시 제물포항)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서는 정지된 모습의 사진 자료를 보아서는 확인할 수 없는 여러 사실들이 확인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부두 노동자들의 동선이다. 항만은 물건이 드나드는 흐름이 중요한데, 이번 영상에서는 인부들의 동선과 화물의 종류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1908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07년 군사권마저 상실한 뒤 한일병합(1910년)을 향해가던 시기다. 인천은 일본이 조선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해 가던 전초기지였다. 일본인 거주지 확장, 항만 재편, 물류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던 상황이 영상 곳곳에 담겨 있다.

미곡부두에 쌓여있는 곡식가마와 부두를 따라 있는 미곡창고(현 인천아트플랫폼), 인천곡물협회의 모습 등이 보인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미곡부두에 쌓여있는 곡식가마와 부두를 따라 있는 미곡창고(현 인천아트플랫폼), 인천곡물협회의 모습 등이 보인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개항기 인천항이 무역항으로 성장하던 과도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항만이 어떻게 운영됐고 누가 일했고 어떤 물자가 오갔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노동자들이 지게에 쌀가마를 지고 배로 향하고, 반대로 목재를 실은 인부들이 배에서 부두 쪽을 향해 이동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인천항을 통해 쌀이 반출되고, 일본산 목재가 반입되던 촬영 당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인천항의 전체적인 수출입 화물의 종류는 파악할 수 없지만,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목조 가옥이 대량으로 건설되던 시기 일본에서 목재가 수입됐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자료다.

촬영된 이들의 복장과 외모를 통해서도 당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맨몸에 가까운 차림으로 지게를 지는 이들은 조선인 노동자들이고, 변발을 한 인물들은 중국인 쿨리로 추정된다. 반면 깨끗한 제복이나 관리복을 입은 이들은 일본인 감독·관리층일 가능성이 크다.

잔교를 내려가는 인부들이 곡식 가마니를 지고 내려가는 모습과 목재를 들고 오르는 모습이 확인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잔교를 내려가는 인부들이 곡식 가마니를 지고 내려가는 모습과 목재를 들고 오르는 모습이 확인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소가 철도 궤도 위에서 수레를 끄는 모습도 포착된다. 항만 확장 공사가 한창이던 과도기의 풍경이다. 임시 선로를 깔고 매립용 흙이나 화물을 옮기기 위해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항이 급격히 팽창하던 시기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영상에 포착된 ‘세관 임시청사’ 공사 장면은 기존 1907년 완공으로 알려진 기록을 뒤바꿀 수 있는 증거다. 1908년 영상에서 여전히 공사 중인 모습이 확인되면서 학술·문헌 기록을 보완·수정할 수 있는 사료다.

전문가들은 이 영상의 가장 큰 가치를 ‘이동 동선’에서 찾는다. 쌀을 지고 내려가는 흐름, 목재가 쌓이는 위치, 세관 관리원이 오가며 검사하는 장면은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다. 인천항의 제도적 기틀이 잡혀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인천시립박물관 배성수 유물관리부장은 “이 영상은 사진이 말하지 못하는 여러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항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동선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며 “갑문이 완공되기 이전 확장하던 인천항의 모습, 노동이 이뤄지던 방식 등을 읽을 수 있는 자료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