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거리를 지켜온 빨간 우체통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다. 국영 우체국이 내년부터 편지 배달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우편제도가 탄생한 유럽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편지 발송량이 90% 이상 줄어든 탓이다. 덴마크 정부가 추진해온 ‘국가 디지털화’가 영향을 미쳤다. 402년간 이어온 우편제도는 디지털의 속도와 편리성에 추월당했다. 이미 우체통 수천개가 철거됐다. 상태가 양호한 우체통 1천개는 경매를 통해 ‘추억 수집상’들의 손에 넘겨졌다. 매겨진 가치는 개당 2천 덴마크크로네(약 46만원)다. 국영 우체국이 하던 편지 배달 서비스는 민간 배송업체가 맡는단다. 우체통은 사라져도, 편지의 낭만은 일부 남겨진다니 다행이다.
한국에서도 우체통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1884년 우정총국이 출범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전국에 5만7천여개가 설치된 1995년이 전성기였다. 이후 2004년 3만3천544개였던 우체통은 지난해 8천66개로 줄어들었다. 30년 동안 10개 중 8.6개꼴로 퇴출된 셈이다. 텅 빈 우편함은 분실물 처리는 물론 수거함으로 기능을 확장했다. 손편지보다 택배가 넘쳐나니 몸집도 키웠다. 2023년 7월 폐의약품에 이어 지난해 11월부터 일회용 커피캡슐을 회수하고 있다. 새해부터는 다 쓴 전자담배 디바이스를 넣어도 된다. 재활용 업체로 전달해 불법 폐기와 환경오염을 줄이는데 기여하게 된다.
우체통은 도시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상징물이다. 여행자들에게는 매력적인 피사체가 되어준다. 높이 7m 광주 광산구 수완호수공원 ‘희망 우체통’, 해돋이 명소 울산 간절곶 ‘소망 우체통’은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이다. 영국의 원통형 빨간 우체통은 빨간 전화박스, 트롤리버스와 함께 3대 명물로 꼽힌다. 미국·러시아의 파란 우체통, 중국·아일랜드의 녹색 우체통, 독일·프랑스·스위스의 노란 우체통도 도시의 고유한 색깔을 완성한다.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우체통에 넣는 설렘은 아련한 옛일이 됐다. 직접 전해도 될 편지에 굳이 우표를 붙이는 비효율마저 즐거움이었다. AI 디지털 초연결 시대, 우체통은 또 다른 ‘착한 쓰임’으로 사람들을 연결해 준다. 우체통은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우체통 없는 도시는 상상만으로도 삭막하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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