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수도권 쓰레기 직매립 금지
준비 안된 현장, 예외 조항만 ‘잽싸게’
매립지 노조 ‘제도 근간 흔든다’ 비판
‘응답하라 1988’이 재방송 중이다. 10년 만이다. 향수(鄕愁) 가득한 드라마는 서울 변두리 동네, 쌍문동의 골목길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소품과 배경을 철저히 고증한 결과다. 집밖에 놓인 시멘트 쓰레기통도 그중 하나. 숨을 멈춘 채 녹슨 쇠뚜껑을 들어 올려선 쓰레기를 휙, 던져넣으면 끝이었다. 출연진들이 다 같이 찍은 포스터에도 등장한다. 아파트엔 세대별로 쓰레기 투척구가 있었다. 수직 덕트를 통해 곧장 1층 바닥으로 떨어지는 구조다. 뭔들 못 버렸겠나. 저층은 악취에 시달렸다. 쥐와 해충이 집안까지 기어들어왔다.
그러던 우리가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를 시작했다. 1995년 1월1일의 일이다. 서울 난지도에 쓰레기 산이 솟아오르고, 토양과 수질오염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지 오래였다. 시행을 하루 앞두고 전국의 주택가는 내다 버린 폐가재도구, 낡은 옷가지, 헤진 이불들로 홍수가 났다. 8개월 전부터 시범운영을 했음에도 그랬다. 신문과 TV 캠페인이 이어지고, 영화관에선 ‘대한뉴스’가 돌아갔는데도 그랬다. 시행 첫 주, 훗날 장관직에까지 오른 당시 환경부 담당과장이 KBS ‘아침마당’에 나와 종량제 봉투를 흔들어댔다. “전국에 계신 주부님들, 도와주십시오!”
10년 뒤, 이번엔 음식물류 폐기물 직매립 전면 금지다. 2005년 1월1일부터 음식물쓰레기를 소각하거나 사료와 퇴비로 만들고, 잔재물만 매립할 수 있게 했다. 정부는 기준과 규칙을 정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전용 수거봉투와 용기를 마련했다. 물 만난 건 가정용 처리기기 업체들.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허위광고를 해댔다. 그래도 이내 본궤도에 올랐다. 지금 도시 생활폐기물 중 음식물쓰레기 매립 비중은 2% 미만이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을 따라갈 만한 나라가 없다”고 보도했다.
다시 20년 뒤, 내년 1월1일부터 모든 쓰레기의 직매립이 금지된다. 전 국민의 절반이 훨씬 넘는 수도권부터 시작이다. 4년6개월 전 그렇게 못 박았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 시행, 2005년 음식물쓰레기 직매립 금지에 이어 세 번째 단행하는 거대 환경정책이다. 시행까지 이제 일주일 남았다. 그렇다면 지금 현장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주어졌던 5년 시간을 생각하면 이게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이달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총리,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수도권 광역지자체장들이 모여 직매립 금지 이행 업무협약서를 들고, 사진 찍고, 웃으며 박수친 게 다다. 공공소각시설의 신·증설과 개량이 핵심인데, 인천 송도자원순환센터 현대화 사업과 성남시 환경에너지시설 착공을 제외하곤 모두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태 아닌가. 그냥 모여서 선언만 한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나 아무에게도 손해 가지 않는 선에서 정치적 제스처만 취한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겨우 한 게 ‘직매립 금지 예외 적용 기준의 연내 법제화’다. 지난 5일 ‘재난 발생 시, 폐기물 처리시설의 가동이 중지되는 경우,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엔 직매립을 허용하기로 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걸 말한다. 그것 하나만큼은 ‘잽싸게’ 했다.
지난 17일 기후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의 첫 질문을 받은 장관은 당장 이 예외 조항과 기존 민간소각시설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사안마다 “현재로선 대란이 생길 것 같지 않다”,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답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시는데,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 말이죠?”라며 매듭지었다. 딱 2분42초 걸렸다.
업무보고 전날, 충북과 수도권 환경단체들이 서울 쓰레기가 충북지역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기후부의 무능과 책임 회피를 성토했다. 업무보고 다음날엔 수도권매립지 노조가 직매립 금지 예외 조항을 통해 매립의 길을 다시 열어줌으로써 정부 스스로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북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민간소각시설이 멈추면? 대통령은 ‘댓글’을 통해서라도 현장의 외침을 들어보시길 바란다. 현장은 보고와 다르다.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