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경인일보는 지난 80년 경인지역의 매일을 신문으로 남긴, 기록자다. 지역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물론, 지역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지역의 이슈를 세상에 알렸다. 특히 경기도·인천에서 발생한 사회적 참사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했다. 수십명의 학생이 숨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1주기에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고 어린 아이들이 안타깝게 사망한 화성 씨랜드 참사 이후에도 여전한 불법시설 행태를 고발했다.
세월이 흘러도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기 위해 경인일보는 피해자와 유족에 귀를 기울인다. 굳은 마음으로 펜을 잡고 지역언론으로서 사회적 기억 형성에 힘을 기울였다. 모두가 잊어도 우리는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록하겠다는 지역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
19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에 번진 큰 불
최소 안전 장치도 없어 학생 수십명 희생
1999년 10월 30일 토요일 저녁,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의 한 상가건물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지하 노래방 공사 현장에서 발생해 금방 꺼졌지만, 건물 2층 호프집에서 학생 수십명이 대피하지 못하면서 57명이 숨지는 등 1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호프집은 경찰 등 공무원과 결탁해 폐쇄 조치가 됐음에도 불법으로 영업을 강행했고 스프링클러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영업해 피해를 키웠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호프집을 갔다가 숨진 학생들에게 날선 비난이 이어졌고, 불량 청소년이라는 이미지를 씌워 살아남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괴롭혔다.
경인일보는 인현동 화재 참사 1주기를 맞아 수십명의 학생이 숨졌어도 개선되지 않은 유흥업소 단속 실태를 고발하고 살아남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취재했다. 여기에 더해, 학교가 끝난 후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 조성의 필요성과 불길을 키우는 가연성 내장재 사용 제한 등 소방법 개정 필요성 등을 지적했다. 단지 1주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매년 인현동 화재 참사 관련 기사를 이어갔다. 26주기를 맞은 올해도 추모식에 참석해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참사 당시 손님이 아닌, 종업원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故 이지혜 학생의 명예회복 필요성에도 힘을 실었다.
화성 씨랜드 화재참사
컨테이너 객실에 스티로폼 천장 불법시설
화성 씨랜드 불길에 목숨 잃은 6세 아이들
지난 6월 화성 서신면 궁평관광지에 씨랜드 화재참사 추모공원이 조성됐다.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숨진 씨랜드 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26년 만이다. 씨랜드 화재참사는 1999년 6월 30일 자정을 넘긴 시각 발생했다. 컨테이너 객실에 스티로폼 천장, 제대로 된 소방시설 하나 없었던 수련원은 금세 불길에 휩싸였고 6살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아이들은 대피도 못한 채 희생됐다. 불이 꺼진 사고현장 뒤로 인허가 비리 등 수련원을 둘러싼 불법적 행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그러나 어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당시 씨랜드 수련원을 운영했던 원장은 자신의 잘못으로 수십명의 아이들이 숨졌음에도 가족의 명의로 참사 현장 주변에 불법시설을 조성해 또 다시 운영에 나섰다. 이러한 사실이 경인일보 보도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들은 참사 2년 뒤인 2001년 씨랜드 부지 바로 옆으로 근린생활시설 신축 허가를 받은 뒤, 일부 건물을 불법으로 건축해 운영했다. 씨랜드 참사 10주기 추모식 당시 화성시가 해당 불법시설을 적발해 철거했지만, 이들은 또다시 펜션, 방갈로 등 더 큰 규모의 무허가 불법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화성시가 이들의 불법시설 운영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씨랜드 화재참사가 발생한지 26년이 지났다. 여전히 이들은 참사 부지 옆에 대규모 카페를 운영 중이다. 씨랜드 추모공원이 생기기 전에는 참사 부지를 주차장으로 사용했으며 일부 매체는 이곳을 지역 맛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제주 수학여행 떠나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
“가만히 있으라”는 말 듣고 기다리다 참변
11년 전,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 안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던 수백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회적 참사였다. 경인일보는 희생자 대부분이 안산지역 학생들인 만큼 세월호 참사 관련 취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의 트라우마 문제를 짚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와 정치권에서 약속한 과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짚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참사 이후 10년을 반추했다. 10년의 시간 속 유가족의 이야기와 더불어 함께 아파했던 안산지역 시민들의 이야기, 시간이 흐르며 위축된 안산지역 상권, 피해보상금 관련 유언비어 등 조금은 불편해도 우리가 겪은 10년간의 일을 기사를 통해 기록했다. 특히 일본 히로시마와 독일 베를린 등 해외에서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살피며 일상 속에서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처 보듬고 유족에 귀 기울인 경인일보
비극 반복 막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기록
우리는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사고를 ‘참사(慘事)’라고 부른다. 경기도·인천은 경제규모도, 인구도, 모든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이면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 화성 씨랜드 화재참사, 세월호 참사, 아리셀 참사 등 사회적 참사가 잇따랐다. 참사가 더 안타까운 이유는 소방시설만 제대로 갖췄더라면, 지자체가 불법시설을 제대로 살폈더라면, 지난 참사를 기억해 주의를 기울이고 예방했다면 죽지 않았을 생명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은, 지역사회는, 지역언론은 더 잊을 수가 없다.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기억하며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로 바꾸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매년 추모식을 열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되새기는 것 역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큰 의미다. 주기적인 기억을 되살리는 건 일상 속에서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추모할 수 있어야, 모두의 안전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산 시민들의 휴식처인 화랑유원지에 추모 공간을 만들고자 목소리 냈던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안전한 사회는 기억과 추모로만 만들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과 함께 지난 10년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2024년 4월 1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경인일보 사설 일부)
※기사 싣는 순서
① 촛불시위 시초 효순·미선이 그리고 미군
② 수도권 왓치독, 경인일보
③ 새벽에 홀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④ 벼랑 끝 자영업자 죽음의 진실
⑤ 사회의 가장 작은 목소리를 듣다
⑥ 경인일보가 30년 전 보낸 경고
⑦ ‘좌표 찍기’ 공무원 사망사건
⑧ 경기도 도시개발의 민낯
⑨ 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나
⑩ 학대와 방임 속에 떠난 아이들
/공지영·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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