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옥 40여명·퇴학 200여명에도
광주학생독립운동가 서훈 야박
내년 3·1절 기쁜 소식 전달되길
대통령 결단을… 다르리라 믿는다
내가 살던 광주(光州)는 민주의 도시이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군홧발에 짓밟힌 곳, 수천명의 양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당한 곳,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국가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일어선 곳,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으로 맞선 곳, 그곳은 빛고을 광주였다. 그래서 광주는 민주주의 성지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광주는 민주주의 성지이자 독립운동의 성지였다.
지난 12월6일 나는 광주행 열차를 타야만 했다. 이날 광주에서는 한 분의 이장(移葬)행사가 있었다. 평생 서른여덟 번 수갑을 차야 했던 분, 일제 치하에서 4년의 옥고를 치렀고, 이승만 독재하에 또 4년의 옥고, 박정희 독재하에서 또 옥고를 치른 분이다. 이기홍(1912~1996) 선생이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젊음을 바쳤던 저희들의 삶도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들의 민중 시인 김남주의 삶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 1964년 굴욕적인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싸움에 나서고 있을 무렵, 이 선생은 청년들을 호출하였다. 선생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전해 주었고, 민주화운동의 방략을 가르쳐주셨다. 12월6일 12시 선생의 유해를 망월동 국립묘지(구묘역)에 이장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선생은 17세의 소년으로 1929년 11월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식민 통치를 반대한다. 노예 교육을 반대한다” 외치며 시위에 앞장섰다. 체포되었으나 나이가 어리다고 풀려났지만, 백지동맹을 주도하다 퇴학당하였다. 고향 완도로 내려가 농민의 지각과 단결을 돕는 농민운동에 투신하였다. 1933년 일본 경찰은 이 선생과 그의 벗들을 적괴(赤傀)라 하여 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해방되었으나 반민 특위는 무력하였고, 친일파들이 설쳤다.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추진하자 이 선생은 단정에 반대하는 벽보를 붙이고 다녔다. 그로 인해 또 옥고를 치렀다. 가도 가도 힘든 세월이었다.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이 선생은 중정에 붙잡혀가 고문을 당했다. 그렇게 이 선생은 독립과 민주, 두 역사를 한 몸에 지고 고단한 삶을 이기며 살아갔다. 선생은 역사의 등불이요 시대의 목탁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거부하고 있다.
이기홍만이 아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의 경우 그 사건으로 4번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슨 까닭인지 정부는 서훈을 꺼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은 참으로 야박하기만 하다. 파악된 광주만 해도 투옥된 40여 인에게도, 퇴학당한 200여 명에도 정부의 태도는 차갑기만 하다. 제2의 3·1운동, 세계 3대 학생독립운동의 하나인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왜 이렇게 야박한 대접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독재정권의 악습이 이렇게 뿌리가 깊고 역사의 왜곡이 철저하단 말인가.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정부수립 77년, 10만명이 넘는 항일독립운동가들 중 유공자 서훈을 받은 분들은 고작 2만명이 되지 않는다. 8만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들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훈장도 있고 새마을 훈장도 있는데, 대한민국엔 독립훈장은 없다. 이게 나라인가?
해방 80년, 이 많은 세월에 해방을 위해 삶을 희생당한 사람들의 공훈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취임 6개월이 지났건만 달라진 것은 없다. 독립운동가를 예우하지 않는 나라, 젊음을 나라에 바쳤건만 그 숭고한 희생을 외면하는 나라, 이것도 나라인가? 언제까지 이 억울한 현실을 방치할 것인가.
나의 장인어른 이계춘(李啓春) 지사는 광주농업학교 학생으로 1929년 11월3일 학생 시위에 앞장섰다 체포 구속되어 11개월의 징역살이를 하셨다. 다행히 자료가 확실하여 서훈을 받아 현재는 국립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그래서 나도 독립운동가 후손의 한 사람이다. 서훈받지 못하는 운동가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견디지 못하며 살아간다. 2026년 3·1절에는 그동안 서훈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유족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결단을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르리라고 믿는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명예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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