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의미 민주주의 복원은 아직 안돼

보수외피 쓴 극우, 한국정치 미궁 몰아넣어

상대 진영과 적대적 공생 프레임 바꿔야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한국정치사는 1년간 두 번의 변곡을 지났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전후, 올해 6·3 대선 전과 후 두번의 전환이 그것이다. 계엄의 그늘은 계엄의 주범과 공범,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와 중요임무종사자 혐의의 기소와 재판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워졌고, 진영 간 골은 메우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졌다. 계엄이 3시간만에 해제되고 윤석열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된 후, 체포 과정부터 진영이 갈라지는 희한한 경우를 경험했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 법원에서 정당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이 무효라고 외치며 한남동서 진을 치고 윤석열을 보호해야 한다고 기세를 올리던 국민의힘 의원들, 이른바 태극기 세력들, 그리고 법원에 폭도가 난입해도 애국청년이라 부르짖던 극우 세력·유튜브들. 이들은 한국사회의 극우적 사고를 종교의 교리처럼 떠받든다. 상대 진영을 이념의 색안경으로 재단하는 이들은 2025년 역시 해방 공간의 좌우 대결의 연장으로 보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인용될 때까지 한국사회는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했다. 급기야 탄핵 기각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도 했다.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헌재의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극우로 불리는 사람들은 윤석열 체포·구속과 심판 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다.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라는 희대의 사기가 극우진영에는 신조처럼 받아들여졌다.

내란·김건희·해병의 3대 특검이 끝났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종합특검의 실행 여부와 별개로 ‘내란’ 1년, 정권이 바뀌고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을 찾았지만 ‘실질적’(substantial) 의미의 민주주의가 복원됐다고 보기 어렵다. ‘절차적’(procedural)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그런대로 공고화되고 제도화되는 와중에 언제는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있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국가사회를 나락에 빠뜨리고 역사를 45년 전으로 후퇴시킬뻔 했던 불법 계엄을 겪고서는 혁명적 변혁이 필요하다. 이 변화를 막는 세력이 극우 세력이다. 이들은 보수의 외피를 쓰고 보수의 상징 자산이라는 성장과 안보조차도 안중에 없다. ‘윤 어게인’에 집착하고 종북·좌빨의 낙인으로 상대를 멸절하려는 시대착시적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세력과 이에 편승하여 상업적 이익에 혈안이 된 유튜브들의 기괴한 결합이 한국정치사회를 미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보수를 가장한 세력이 극단화되고 계엄과 탄핵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김하지 못하는 정파가 존재하는 한 상대 정파·진영 또한 강성으로 일관하기 십상이다.

한국정치에서 진영 대결이 상대 세력에게 자양을 공급함으로써 적대적 공생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굳어졌지만 계엄 세력을 분쇄하고 민주주의가 재가동되면서 이러한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각 영역의 눈부신 도약과 K로 상징되는 빛나는 약진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통합’의 원천적 부재를 결과할 것이고, 그만큼 한국사회는 눈부신 외관과는 달리 언제라도 사회 내부의 불균형과 부정의로 극심한 분열의 도가니로 빠져들 수 있는 취약성을 안게 된다. 위헌적 계엄 이후 진영의 극단적 대치라는 고질적 병폐를 완화시킬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극우 사고를 가진 이들이 윤 어게인과 부정선거론에 빠져있으면서 역사는 전혀 다른 반동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야당의 의회폭거’를 경고하기 위한 계엄으로 옹호하는 일군의 세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규 언론에서조차 기계적 균형이란 미명으로 탄핵심판 절차를 문제 삼았던 주장을 일삼는 세력은 여전히 알량한 법리를 내세운다. 중요한 것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와 그 수하들에 대한 헌법적 단죄이지만, 절차적 명분을 내세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그 추종자들을 어떻게든 편드는데 복무하고 있다. 헌법은 국민 합의에 의한 제도적 결단이고 법률은 헌법을 위반할 수 없다. 국민의힘과 보수가 진정으로 국가의 장래와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면 ‘내란전담재판부’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윤석열과의 결별이 전제되지 않는 어떠한 언어의 유희도 국민의힘의 태세전환을 입증하지 못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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