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스스로 가두지 않고도
정당한 권리가 정당히 지켜지길
천부적 행복이 법의 보장을 받고
다수가 정한 법의 침해 받지 않길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방송에서는 카운트 다운을 하고 사람들은 시간이 하나의 마디를 거쳐 새로운 시간으로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조금은 흥분한 얼굴빛으로, 혹은 다소 쓸쓸한 표정으로 지나간 시간을 더듬고 있다.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새해의 행복을 비는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손에 든 작은 전자기기로 수신될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기다리기도 한다. 깜짝 놀랄만한 행운이 새해에는 자신과 가족의 보금자리로 깃들기를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불행이 우리의 삶 속에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좀 더 소박한 바람으로, 대단한 새해의 복이 아닐지라도 지금까지의 생활을 지켜주던 직장에서의 일과 소득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서로를 의지하던 마음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는 소원을 품어보기도 한다. 어쩌면 어둡고 무거웠던 지난해의 고통이 새로이 시작되는 한해에는 조금 덜어지기를 바랄 수도 있고 개선되지 않는 삶의 곤궁함에서 오는 마음의 부침이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지난해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소박한 기도들을 들어줄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사랑하시어 권능의 손을 거두고 멀리서 유약한 우리들의 기도와 기원의 합장을 긍휼의 섭리로 지켜만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위하는 그 소중한 마음들이 사실은 삶을 헤쳐나갈 우리의 의지를 지켜주는 신들의 작은 선물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는 해가 넘어가는 이 짧은 순간에 용기를 내어 빌어보는 것이다. 각자가 바라는 마음이 우리의 좁은 경계를 넘어 보다 넓게 퍼져나가기를, 나 자신에서 그치지 않고 가족과 친구에게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들의 삶에로, 좀더 욕심을 부려 이웃에게로, 내 공동체와 직장과 동료에게로, 나라와 민족에게로, 세계의 귀퉁이에서 환난을 겪고 있을 어느 인류의 족속에게로, 지구의 한 종에 불과한 인류에 그치지 않고 우리와 생활의 등을 마주 댄 개와 고양이에게로 안전과 평온이 닿기를 빌게 되는 것이다. 반려의 생명뿐이랴. 실은 우리가 삶을 기대고 있는, 그래서 어느 한 축이 무너진다면 지구 가족 모두가 불행으로 떨어지게 될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에게로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의 한편을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생명체에 그칠 일일까. 그 생명들이 살아갈 지구의 모든 날줄과 씨줄인 바다와 산, 흙과 바람과 구름이 온전히 그들이 가진 순환과 균형의 속성에 따라 무사하기를 모든 목숨의 겸허함으로 바라는 것이다.
인류의 업적으로 우뚝 솟아 바라만 보아도 경탄이 나오는 거대한 구조물의 설계를 도맡는 공학자도 아니요, 병자를 고치던 신의 기적처럼 인류의 생로병사를 지키는 의료인도 아니요, 창조주의 섭리로 알던 천체의 행로를 밝혀내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인류에게 스스로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물리학자도 아닌,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지친 몸을 누이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개인의 무용한 슬픔과 기쁨에 사로잡혀 그 무용함이 주는 위안을 위해 글을 쓰는 비관론자에게도 작은 희망으로 기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가 넘어가는 이 밤에 몇 가지 바람을 서툴게 적어보고 싶다.
새해에는, 물질이 물질을 낳고 돈이 돈을 낳아 저절로 몸을 불리는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평안을 낳아줄 지푸라기조차 없어 새벽부터 허리 숙여 일을 하고 해가 져야 고개를 드는 사람들이 정정당당하게 제값을 받고 일하며 제때 임금을 받고 갑자기 해고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지킬 수 있길 바란다. 높은 곳에 스스로를 가두거나 몸을 묶지 않고도 정당한 권리가 정당하게 지켜지기를, 일하다가 다치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으며 배려나 선의가 아니라 제도로 보장받는 평안 속에서 모두가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가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스스로가 정한 삶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기를, 그 천부적 행복이 법의 당연한 보장을 받고, 그럼에도 다수가 정한 법으로도 침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성별의 차이가 권력이 되지 않으며, 권력과 자본의 이기심으로 무리 지은 인류가 또 다른 인류의 삶을 파괴하고 침략하지 않기를 기도드린다.
/이원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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