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단순 표현 아닌 사고의 틀
요즘 정치, 상대 비판 날카로워
똥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란다
잘 섞여 내일 키우는 거름 되길
2026년을 ‘병오년, 말의 해’라고 부르는 표현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양력 기준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간지와 띠는 음력을 기준으로 할 때 의미를 갖는다. 이 표현이 틀렸다기보다는 기준이 설명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기준이 생략된 언어는 전달보다 오해를 낳기 쉽고 생각의 방향을 흐리게 만든다.
이 장면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새해 인사에서 오가는 한마디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의 기준을 묻는 이 문제는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에 서 있는지 밝히지 않은 말은 듣는 사람에게 각자의 기준을 불러오고 그 순간 언어는 설명의 도구가 아니라 오해의 출발점이 된다.
간지와 색, 방향은 자연의 절대 값이 아니라 인간이 오랜 시간 합의해 온 문화적 언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느냐가 아니라, 그 언어를 어떤 기준과 맥락에서 사용하느냐다.
요즘 정치의 언어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서로를 향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그 비판이 어떤 원칙에서 출발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럴 때 오래된 속담 하나가 조심스럽게 떠오른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다. 이 속담은 상대를 조롱하기 위한 말이기보다 자기 허물을 숨긴 채 상대를 판단하는 태도를 경계하라는 뜻에 가깝다.
오늘날의 정치판은 어느 편에 서야 분명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어느 진영에 속해야 정의로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된 정의는 대체로 자기편 내부에서만 유효하다. 상대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식은 정의의 구현이라기보다 자기 확신의 반복에 가깝다. 이는 상대를 설득하려는 태도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일종의 자기 만족에 가까운 장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다름이 필요하다. 문제는 다름 자체가 아니라 다름을 적대의 근거로 삼는 언어다. 그 순간 정치의 언어는 설명을 멈추고 동원을 선택한다. 맥락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판단하고 점점 더 느리게 이해한다. 편을 고르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생각이 깊어질 시간은 줄어들었다.
여기서 다시 그 속담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똥과 겨는 각각으로 보면 불결하거나 쓸모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섞여 일정한 시간을 지나면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깨끗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섞이고 얼마나 기다릴 것인가다. 사회의 갈등도 다르지 않다.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그 갈등을 곧바로 선악이나 승패로 나누려는 태도가 문제일 수 있다. 숙성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어떤 새로운 생각도 자라기 어렵다.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정치 자체라기보다 행태에서 기인되었다. 충분히 드러내고, 충분히 설명하고, 충분히 시간을 두는 과정이 없기에 정치는 거칠어지고 사회는 경직된다. 그때 정치의 말은 공동의 삶을 조율하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밀어내는 경계선으로 작동한다.
언어의 정확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정답을 말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같은 기준 위에서 말할 때 비로소 견해의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토론이 된다. 기준이 공유되지 않은 채 오가는 말은 결국 힘이 센 쪽의 언어만 남기기 쉽다.
우리는 누가 옳은지를 묻기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의는 감정의 크기로 증명되지 않는다.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언어가 정확해질수록 비난은 줄어들고 책임은 분명해진다.
그래야 비로소 똥과 겨가 잘 섞여 내일을 키우는 거름이 될 수 있다. 새해의 시작은 거창한 선언보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과연 누구에게나 공정한지 점검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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