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인천광역시와 경기도의 이야기를 기록해 온 80년. 경인일보는 비극적인 참사를 그저 ‘사건’으로만 보도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기폭제로 승화시켰다. 창간 80년을 맞아 되짚어본 ‘경인일보가 바꾼 세상’ 기획의 마지막 시선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이들에게 돌려본다.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했던, 학대와 방임에 노출된 아이들의 이야기다. 경인일보는 이 사회의 보호망이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뼈아픈 질문을 던져왔다.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 속에서, 그리고 경기 화성시 한 입양 가정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의 눈물 속에서 이러한 비극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경인일보는 치열하게 추적하고 기록했다.

인천 초등생 형제 화재 사건

인천 빌라서 화재… 학교에 있어야 할 형제 참변

돌봄시설 문제 확인·양육자 분리제도 미비 지적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가 크게 다친 사고 현장. 녹아버린 잠금장치가 당시 대피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경인일보DB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가 크게 다친 사고 현장. 녹아버린 잠금장치가 당시 대피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경인일보DB

2020년 9월 15일 경인일보는 ‘인천 용현동 빌라 불… 초등생 형제 2명 다쳐’라는 짧은 분량의 단신 기사를 언론사 가운데 가장 처음 보도했다. 전날 오전 11시16분께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4층짜리 빌라 2층에서 불이 나 집에 있던 8살, 10살 형제가 의식을 잃고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119 신고를 접수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10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지만 형제는 크게 다쳤다. 의식불명 상태였던 형은 건강이 호전됐으나 동생은 끝내 숨졌다.

화재가 발생한 시간은 오전 11시. 초등학생인 형제는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학교는 문을 닫고 비대면 수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형제는 그렇게 화마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됐다. 경인일보는 이를 곧바로 전염병 확산으로 제도권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벌어진 ‘사회적 참사’로 바라보고 보도를 이어갔다.

첫 온라인 보도 이후 경인일보는 곧바로 사고 현장을 찾았고, 이웃 주민들로부터 형제의 딱한 사연이나 목격담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슈퍼 주인은 마른 몸으로 한겨울에 고무장갑을 사러 나온 형제의 모습을, 형제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걸어서 20분이 걸리는 등하교 길에 손을 꼭 잡고 가던 아이들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이 과정에서 경인일보는 아이들이 밤마다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깬 이웃들이 경찰에 수차례 신고를 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엄마가 형제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한다는 신고가 세 차례나 접수됐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엄마와 형제가 분리돼야 한다고 판단해 분리·보호명령을 법원에 청구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법원은 이들 가정에 상담을 받으라는 조치만 내렸으며 그조차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도했다. 아이들이 학교뿐만 아니라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집’에서조차 방임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경인일보 보도 이후 인천시는 물론 국무총리와 대통령도 이 사고를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땜질식 처방에 그치지 않도록 ‘코로나 속 아동보호 사각지대’라는 기획으로 아동보호기관와 돌봄시설의 문제점과 사법기관의 양육자 분리 제도에서 미비한 점을 꼬집었다.

안산 유치원 집단 식중독 감염

안산 유치원 아이들 100여명 ‘햄버거병’ 단독 보도

정부, 전국 시설 점검… ‘급식관리 개선’ 마련 계기

안산 한 유치원에서 식중독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하자 안산시 단원구 주민복지과 가정복지팀 관계자들이 한 아동급식 도시락업체를 찾아 제조과정을 살펴보며 안전급식을 위한 위생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경인일보DB
안산 한 유치원에서 식중독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하자 안산시 단원구 주민복지과 가정복지팀 관계자들이 한 아동급식 도시락업체를 찾아 제조과정을 살펴보며 안전급식을 위한 위생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경인일보DB

2020년 6월 12일 경기 안산시 상록동 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식중독 증상을 호소했다. 이후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구토와 설사 등 증상을 보였고, 여름철 대규모 식중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경인일보는 아이들이 단순 식중독을 넘어 이른바 ‘햄버거병’이라 불리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파괴되면서 발생하는 이 질병은 치명적인 신장 기능 손상을 초래한다. 아이 18명이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진단받고 투석 치료까지 받는 상황이 초래됐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 유치원 냉장고 성능 이상으로 식자재에서 대장균이 증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인일보는 아이들의 건강 상태와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시시각각 보도하면서 이러한 집단 식중독 감염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 식품위생법과 유아교육법이 뒤섞여 유치원 급식을 관리·감독할 근거를 마련하고 있었으며 관리 지침을 수립하는 역할은 교육청이, 실제로 관리를 하는 주체는 기초자치단체였다. 두 기관이 책임 미루기에 급급한 사이, 안전하지 않은 급식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식탁 위에 오르고 있었다.

여러 곳의 유치원이 공동으로 단 1명의 공동영양사를 고용할 수 있게 허용한 예외 조항 탓에 급식 운영은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식품위생법상 성인 대상 급식을 제공하는 50인 이상 급식소에는 상주 영양사가 배치돼야 하지만,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상 100명 이상 시설에만 영양사를 배치해도 됐다. 게다가 유치원 5개가 공동으로 영양사를 둘 수 있도록 예외를 둬, 식사를 전문적으로 책임지는 영양사가 실질적으로 영양과 위생관리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집단감염이 벌어진 안산의 유치원도 원아 165명을 관리하는 영양사가 인근 유치원 5곳도 함께 관리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전국 유치원·어린이집 급식 시설을 대상으로 위생 점검에 나섰고, 점검 결과를 토대로 ‘급식 관리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학교급식법과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해 50인 미만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보존식을 반드시 보관하도록 했다. 또 100인 이상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공동영양(교)사 배치 기준을 최대 2곳으로 제한하고 200인 이상은 단독으로 영양(교)사를 배치하도록 했다.

화성 입양아동 학대 살인사건

화성서 생후 33개월된 민영이, 양부모 폭행에 사망

1년동안 70여건의 기사로 사건 지속적으로 공론화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후문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민영이 양부모의 살인죄 적용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근조 화환을 설치하고 있다. /경인일보DB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후문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민영이 양부모의 살인죄 적용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근조 화환을 설치하고 있다. /경인일보DB

2021년 5월 8일 경기 화성시에선 생후 33개월된 입양아동 ‘민영이’가 양부모의 폭행으로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은 민영이의 몸 곳곳에 생긴 멍자국을 발견하고 양부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인일보는 양모가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한 적 있는 사회복지사이며, 양부도 운영을 도왔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취약계층을 돌보는 기관을 운영하던 부모가 아동 학대를 저질렀다는데 시민들은 경악했다.

이러한 참극을 막을 순 없었을까? 입양 담당기관 측은 양부모의 입양 후 1차례 민영이의 가정을 방문했으며, 그 외에는 전화, 이메일, 문자 등으로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입양 담당기관이 직접 민영이의 안위를 살피지 않고 비대면으로 사후관리를 하는 동안 아이는 양부모의 반복적인 폭력에 신음하고 있었다.

문제는 입양 담당기관이 매뉴얼을 위반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시행 중이던 ‘2020년 입양실무매뉴얼’은 입양 후 1년 안에 4차례 사후관리를 해야 하며, 그중 현장 방문은 2차례만 해도 된다. 사건 발생 이틀 후부터는 새 입양실무매뉴얼이 시행될 예정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입양 담당기관이 1년에 6차례 사후관리, 3차례 현장 방문을 하도록 규정이 강화된 것이었다.

경인일보는 특히 민영이가 의식을 잃은 지 6시간이 지난 뒤에야 양부모가 병원에 뒤늦게 데려간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폈다. 또 입양 과정에서 양부모의 심리를 분석해 입양에 적합한 인물인지 알아보는 ‘심리평가보고서’를 확보하며 이미 4명의 친자녀를 둔 이들 부부가 민영이를 입양한 배경 등을 추적했다. 민영이는 끝내 세상을 떠났지만, 경인일보는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1년 동안 70여건의 기사로 사건을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거나 피해 아동들에 대한 폭넓은 지원이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아동학대는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인천 연수구에서 야구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초등생 아들을 무차별 구타해 아들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5월 인천 서구 한 빌라에선 화재로 혼자 집에 있던 초등학생이 숨졌고, 8월 경기 포천에선 생후 16개월 된 아이를 부모가 폭행해 살해했다. 매번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뒤늦게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나서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일선 현장에서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이다.

“뒤늦게 이런저런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하지만 다들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제도가 없어서 이런 참사가 빚어진 게 아니다. 보완하겠다고 이구동성이지만 구멍 난 부분이 어마어마하게 큰 게 아니다. 일찌감치 경보가 울렸음에도 직접적인 구조와 구난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관련기관들의 협력과 문제 해결 의지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그게 본질이다. 간과한다면 그저 일회성 생색내기에 불과하다.”(2020년 10월 7일자 경인일보 사설)

※기사 싣는 순서

① 촛불시위 시초 효순·미선이 그리고 미군

② 수도권 왓치독, 경인일보

③ 새벽에 홀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④ 벼랑 끝 자영업자 죽음의 진실

⑤ 사회의 가장 작은 목소리를 듣다

⑥ 경인일보가 30년 전 보낸 경고

⑦ ‘좌표 찍기’ 공무원 사망사건

⑧ 경기도 도시개발의 민낯

⑨ 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나

⑩ 학대와 방임 속에 떠난 아이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