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호주 등 로비스트 합법 제도화 관리

美 로비 부작용 펜타닐 남용에 45만명 사망

선진국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병립 의문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정치권의 뇌물 스캔들이 일파만파이다. 통일교의 여야 불문 금품제공과 정치적 후원 의혹에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지방선거 공천헌금 비리 혐의까지 불거진 것이다. 통일교는 물론 정부와 여당도 편치 못하게 생겼다. 지난 4일에 이수진 전 국회의원이 2020년 총선 때 김병기 의원의 돈봉투 수수와 관련한 서울 동작구 구의원들의 탄원서를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실에 전달했지만 묻혀버렸다고 폭로한 것이다.

뇌물이 일상화되면 공정성과 신뢰가 무너져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 저하는 물론이고 자칫 정권까지 붕괴된다. 요즘에는 뇌물 대신 세련된 표현(?)인 로비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뇌물과 로비는 의미가 다르다. 뇌물수수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로, 비밀리에 수행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로비는 기업, 비영리 단체, 노동조합, 산업협회 등이 공무원이나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로 합법적이다.

국내에서는 로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 호주, 독일 등은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로비 활동을 제도화해서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관업무 관련 로비스트들이 공공연하게 활동 중인데 미국의 로비스트는 2023년 기준 약 1만2천939명이며, 연간 로비 시장 규모는 300억~400억달러(약 41조원)로 집계되었다. 미국 기업과 외국 정부 및 미국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로비스트 고용에 적극적인데 최근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로 주목받는 쿠팡은 미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등 로비스트 23명을 고용 중이다. 쿠팡이 미국 정부의 영향력을 빌려 국내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펜타닐과의 전쟁도 로비활동과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작년 2월에 “펜타닐을 미국에 반입하면 사형에 처해야 한다”며 원료 공급국인 중국에 관세 20%를 부과했다. 7월에는 펜타닐의 미국 내 유입 및 유통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골자로 하는 ‘펜타닐중지법’에 서명했으며 8월 이후에는 마약카르텔 단속을 빌미로 베네수엘라 선박들을 포격하고 마두로 대통령까지 생포했다. 또한 트럼프는 지난달 15일에 펜타닐을 대량살상무기(WMD)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의 하나로 모르핀보다 최대 100배, 헤로인보다 50배나 강력해 주로 말기암 환자 등 통증이 극심한 환자에게 처방된다. 그러나 의료용이 아닌 환각용으로 불법유통되면서 최근 10년간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미국에서 최소 45만 명이 사망했는데 로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생산하는 제약업체들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정치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오피오이드 금지법 제정을 무력화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식품의약국(FDA)과 법무부 마약단속국(DEA)의 감시 감독까지 느슨하게 한 때문이다.

덕분에 퍼듀, 존슨앤존슨 등 제약업체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월스트리트의 금융맨들은 로비스트의 조력을 받아 금융위기의 책임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이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수억 달러를 챙기고도 처벌받지 않았지만 수많은 서민들은 직장과 집을 잃었다. 미국의 로비자본주의는 돈 없는 다수로부터 돈 많은 소수에게로 부(富)의 상향재분배를 가능케 했다.

미국자본주의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포퓰리스트인 트럼프에게 두 번이나 대선 승리를 안겼다. 2021년 1월6일에는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무효를 외치며 연방의회 의사당을 폭력으로 점거해 세계인들을 경악시켰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승자와 패자 간의 분열 심화에 따른 정치 오염과 부(富)의 불평등 심화 탓이라며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근래 한국에서도 박탈감을 호소하는 서민들이 늘어나는 터에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보수와 진보 간의 정치 양극화도 심해졌다. 고소득국들의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계속 병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