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80년대, 석유를 손아귀에 쥐고 세계 정세를 좌지우지하던 인물이 있었다. ‘석유 황제’로까지 불린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메드 자키 야마니(1930~2021). 사우디 출신 최초의 국제변호사이기도 했던 야마니는 1962년 사우디의 석유·광물자원부 장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초대 사무총장을 맡으며 국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OPEC은 사우디와 베네수엘라가 주도해 만든 주요 산유국 협의체다.
야마니는 국제 관계에서 석유를 무기처럼 활용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맞섰다. 세계 석유 시장의 큰손이 된 야마니는 OPEC 회원국 간 생산 할당량을 배정하고 생산량을 줄이거나 늘리는 방식으로 유가를 조절했다. 1970년대 제3차 중동전쟁 때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그들에게 석유수출을 금지했다. 국제 유가는 단숨에 4배나 치솟았고 미국 경제는 멈춰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1차 석유 파동이었다. 세계 경제가 야마니의 손바닥 위에 있던 시절이었다. 야마니는 서방 세계의 눈엣가시였다.
야마니는 그렇다고 유가를 무작정 비싸게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세계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적절한 가격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사우디의 왕족들이 먼저 서방의 뇌물 공세에 무너졌다. 필요도 없는 대형 항공기와 전투기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15%에 달하는 리베이트 욕심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석유 생산을 늘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유가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야마니는 반대했다. 서방 세계의 오랜 공작과 사우디 왕가의 이해가 맞물려 야마니는 25년을 봉직한 석유장관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유가 안정과 중동 평화의 가늠자가 사라진 거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뉴욕의 법정에 세웠다. 미국에 마약을 밀반입시켰다는 혐의다. 많은 이들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마두로를 제거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가 첨단 무기를 앞세워 석유 빼앗기에 나선 셈이다. 트럼프는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생산하게 된다면 유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의 군사작전 비용까지 구매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석유가 없는 우리로서는 야마니의 석유 무기화도, 트럼프의 무기 석유화도 달갑지 않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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