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갈 곳 있어 좋아” 어르신 말에 뭉클
누군가에 도움될때 단단한 이웃 연결 느껴
일이 사람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사회 되길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몸은 조금씩 느려지고, 예전보다 생각이 많아지고, 어느 날 문득 세상에서 내가 조금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예전에는 쉽게 해내던 일들이 조금씩 부담이 되고, 새로운 변화 앞에서 한 템포 늦게 서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나이 듦’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며 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빛이 가시기도 전에 가게 문을 여는 분, 작은 텃밭을 일구며 하루를 시작하는 분, 동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웃음소리를 만드는 분들. 그분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하루를 어디론가 걸어가며 시작하셨습니다. 하루의 목적이 있고, 아침의 기다림이 있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장님,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어도, 누가 나를 기다린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마음,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 말을 직접 하지 않아도, 그분들의 눈빛과 태도에서 저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몸의 속도는 느려질지 몰라도 마음의 의지는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노년은 하던 것의 축소가 아니라 해볼 것의 확장일 수도 있겠구나. 무언가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장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저는 그런 깨달음을 현장에서 자주 얻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은 나이가 들었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절실해지는지도 모릅니다. 일을 통해 내 시간이 의미 있다고 느끼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이 여전히 사회와 이웃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노년의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많은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하면 외롭지 않아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마음이 살아나요.” “집에만 있으면 나 같지가 않아요.” 한 분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손님이 ‘이모, 오늘도 나오셨네요’ 하고 인사할 때 아, 내가 아직 누군가에게 반가운 사람이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요.”
이 말들은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일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분들이 제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쓸모 있는 노년’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그 가치와 능력을 다시 볼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마련해야 할 책임이 우리 사회 모두에게 있습니다. 노년의 일은 생계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존엄을 지키는 일이고, 웃음을 되찾는 일이며, 세상과 계속 이어져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입니다.
저는 언젠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주 크지 않아도 좋고, 조용해도 좋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자리에서 말입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사회, 일이 사람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사회로 우리가 함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일하는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존경합니다.
/이동환 고양특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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