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적 인식서 비롯된 ‘개화’ 문제의식 깔려

342편 글 수록, 의병장 유고·일제 비밀문서 번역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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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기 아닌) 일제침략기 의병문학┃이태룡 지음. 미래엔 펴냄. 1천248쪽. 10만8천원

의병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인 이태룡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40여 년 동안 의병 관련 문학 자료와 사료를 추적해 왔다.

전국의 의병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며 흩어져 있던 기록을 수집했고, 의병장의 유고와 일제 비밀 문서에 남아 있던 원문을 발굴·해설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연구는 의병 항쟁을 ‘사건’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생성된 언어와 기록의 층위에서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출간한 ‘일제침략기 의병문학’은 제목부터 통설적인 역사 용어에 문제를 제기한다.

책 제목 앞에 덧붙은 ‘개화기가 아닌’이라는 표현은 저자가 오랫동안 비판해 온 역사 인식과 맞닿아 있다. 이 소장은 ‘개화기’라는 용어가 근대화를 외부 문명의 수용 과정으로 설명하는 식민사관적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일본의 침략과 무력 개입을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포장함으로써 조선 사회 내부의 변화와 이에 맞선 저항의 역사를 가려왔다는 것이다.

이 소장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1894년부터 1910년 한일 강제병합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개화기가 아니라 ‘일제침략기’로 규정돼야 한다.

이 기간 수백만 명에 이르는 민중이 의병으로 나섰고, 그들은 무력 투쟁과 함께 말과 글로 시대의 현실과 자신의 선택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기록은 개인의 체험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이자 역사적 증언으로 기능한다.

저자는 일제 식민사관이 왜곡해 온 침략기의 현실을 가장 생생하게 담아낸 자료로서 의병이 남긴 저항의 기록, 즉 ‘의병문학’에 주목한다. 의병문학은 침략의 시대 속에서 민중이 어떻게 살아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전하는 말과 글의 집적이라는 설명이다.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이들의 언어에는 당시 민중의 삶과 인식, 시대의 언어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교육적·문학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일제침략기 의병문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의병이 남긴 다양한 글을 갈래별로 정리해 수록했다. 통문과 격문, 가사와 일기, 편지와 한시, 전기와 비문, 상소와 제문 등 총 13개 유형의 글 342편이 해설과 함께 실렸다. 저자는 각 작품이 생산된 맥락과 의미를 설명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으며, 찾아보기에는 작자와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연구자와 일반 독자의 활용도를 높였다.

이 소장은 “의병장의 유고와 일제의 비밀문서에 남아 있던 원문을 찾고 번역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의병문학은 항쟁의 감정을 기록한 자료를 넘어, 침략의 시대를 살아낸 민중의 언어 자체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이 이끄는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학술 연구와 함께 잊힌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국가 포상을 신청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연구소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14차례에 걸쳐 국가보훈부에 모두 5천500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의 포상을 신청한 것으로 집계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