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국제기구 66곳의 탈퇴 각서에 서명했다. 유엔 산하 평화, 인권, 기후, 무역 등과 관련한 31곳에서 손 떼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거부감을 보여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와 ‘PC(정치적 올바름)’와 연계된 비유엔기구 35곳도 정리대상이다. 지난해 트럼프 2기 취임 직후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WHO(세계보건기구) 탈퇴 선언은 복선이었다. 미국이 주도했던 ‘유엔 헌장’의 인권과 자유라는 대전제를 거부하는 역설이다. 국제기구에 지갑을 열어온 미국의 손익 계산기가 정확히 작동했다. 국제사회 공존과 공익에 기여할 의무는 외면하고, 안보리에서 파워게임만 하겠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3일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기자회견에서 ‘먼로 독트린’을 언급했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당시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은 유럽 서반구 개입을 미국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섬뜩한 경고였다. 먼로 대통령은 스페인에 플로리다를,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했다. 트럼프도 영토 획득에 공세적이다. 취임 전부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고 했다.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의 획득에도 눈독을 들여왔다.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 트럼프의 타깃은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다. 군사력 사용까지 운운하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내년 국방비를 50% 늘려 2천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것도 일종의 엄포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집요하고 무례한 집착은 북극해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할 미국의 안보 이익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 석유가 있듯이, 그린란드엔 막대한 희토류와 천연자원이 있다. 안보와 자원, 트럼프의 꿩먹고 알먹기식 ‘돈로주의’의 실체다. 유럽 7개국은 연대 성명으로 미국에 견제구를 던졌지만, 주먹질 앞에서 말싸움은 무의미하다.

지난해 관세전쟁은 미-중 패권시대의 공식 개막전이었다. 트럼프의 관세 스트레이트를 시진핑이 희토류 어퍼컷으로 여유 있게 받아쳤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침공은 차원이 다르다. 중국도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베네수엘라 침공을 대만 침공으로 응수하자니 국가 운명을 걸어야 한다. 트럼프의 치킨게임에 걸린 셈이다. 유엔도 내팽개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해야 한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