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품 정리 후 텅빈 집안

엄마를 위한 물건은 하나도 없어

일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 일상

새해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아빠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평수가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했다. 내가 열두 살 때부터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네 식구가 사십 년 간 살아온 학익동 아파트는, 언니의 결혼과 막내딸인 나의 독립, 아빠와의 사별로 이제 쓸데없이 넓기만 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과 영영 헤어져야 한다는 게 몹시 서운했지만, 추억 때문에 엄마더러 그 넓은 집에서 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흔한살에 혼자가 된 엄마는 씩씩했다. 장례식 때도 눈물을 보이시지 않았고, 아빠의 나무 관에 ‘그동안 수고 많았어’라고 담담하게 적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도 엄마는 늘 씩씩했다. 일찍 퇴직하고 집에서 쉬면서 취미생활에 몰두한 아빠와 달리, 내내 전업주부셨던 엄마는 자식들이 독립해서 집을 떠나자 급식소에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빠는 집 안쪽에 있는 큰방을 썼고 엄마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방을 썼다. 그 방은 결혼하기 전 언니 방이었는데, 가구도 그 시절 언니가 쓰던 그대로였다. 언니에게 침대와 옷장을 물려받은 셈이었다. 엄마의 옷장에는 내가 스무 살 시절 사들인 옷들이 보관되어 있었으니 나에게는 옷을 물려받은 셈이었고. 엄마의 주방에는 고가의 원목 식탁이 있었는데 그건 아버지의 취향이었다. 14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엄마가 앉기에 의자는 지나치게 컸다.

장례를 마치고 아버지의 수집품들을 처분하기로 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의 취미는 수집이었다. 골동품, 그림이나 조각 같은 미술품들, 수석이나 우표 같은 것들을 모으고 전시하는 것이 아버지의 낙이었다. 토요일에는 감정사가 수집품들의 가격을 매겼다. 더 이상 보고 즐거워할 이가 없어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난 뒤의 집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니 집에는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집 안의 물건들 모두가 아버지의 취향이었다. 엄마가 사용하는 작은 방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방은 아버지의 물건들로 가득했다. 집에 엄마를 위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엄마의 신체에 맞는 물건도, 취향에 맞는 물건도 없었다. 화장실 변기 옆에 놓인 작은 책 한 권만이 엄마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변기 옆에 놓인 그 책마저도 내가 쓴 소설책이었다.

이제 언니와 나, 형부는 공휴일이면 엄마를 만나러 간다. 이불이 빨기 힘들다는 엄마에게 빨래방에 가면 말끔히 건조까지 되는 세상이라고 자랑하자, 엄마는 그제야 기계를 작동시키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집이 엄마의 공간이 아니었듯, 바깥 세상도 엄마에게는 틈을 내어주지 않은 것이다. 남편의 취향과 자식들의 속도 사이에서 내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엄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혼자가 되시고 나서는 엄마에게 매일 문자메시지를 드리는데 낮에는 급식소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티브이를 보신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엄마에 관한 전부다. 우리가 주고 받는 문자는 이렇다. 엄마,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그래, 너도 따뜻하게 입고 맛있는 것 먹어. 다음날도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주고 받는다. 날씨가 추워요.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알았어. 너도 감기 조심해. 나는 매일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엄마에게 보내고, 언니는 엄마랑 빨래방에 가기로 한다. 그런 식으로 엄마의 미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걸까? 내일은 엄마에게 조금 다른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싶다. ‘보고 싶은 영화 있으세요?’라거나, ‘좋아하는 요리 만들어서 가져 갈게요!’.

엄마는 이제 스무평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새 삶을 시작할 것이다. 엄마의 새 집에서 엄마의 취향을 알고 싶다. 엄마를 새로 만나고 발견하고 싶다. 그 집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을 찾고, 엄마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구경하고 싶다. 일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취향과 색깔, 일상을 시작하게 될 엄마를 응원한다. 새해에는 새롭게 발견하게 될 엄마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최정화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