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모씨네 협동조합 구술채록 프로젝트, 현장노동자 15명 증언
대우차 부평공장 흥망성쇠·그시절 생산 매뉴얼… ‘자동차맨’ 자긍심 엿보여
“저는 신진자동차,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 지엠대우를 다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차도 좋고 잘 팔리던 신진자동차 시절이 가장 애정이 가요. 내 고장에서 만든 차를 인천시민이 많이 사줘야 하고 내 고장에서 큰 기업이 잘 살아남도록 모든 면에서 협조해 주는 게 후세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원들도 사기 잃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회사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946년생 원영의(1966~2007년 재직)씨가 평생 직장이었던 ‘인천의 자동차 공장’에 대한 구술 작업에서 막바지에 말한 자신의 바람이다.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서 자동차가 만들어진 건 일제강점기 때부터다. 이곳 부평에 1962년 우리나라 최초의 완성차 공장인 ‘새나라자동차’ 공장이 건립됐다. 1965년 신진자동차가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해 이듬해 도요타와 기술 제휴를 맺고 부평공장에서 코로나, 퍼브리카, 크라운 등 승용차를 조립생산했다.
원영의 씨는 신진자동차의 출발점이나 마찬가지인 1966년 입사했다. 2007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41년 동안 새한자동차(1976년), 대우자동차(1983년), 지엠대우(2002년·현 한국지엠의 전신)를 현장 노동자로 모두 겪은 인천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산증인이다.
“처음엔 일본에서 차를 갖다가 뜯어서 조립하는 연습을 하루 종일 했어요. 부쉈다, 떼었다, 조립했다 하는 것이 일과예요. (중략) 그렇게 해서 머리에 남으라고. 도시락 싸오는 사람은 먹고, 없는 사람은 굶어가며 처음에는 하루든 이틀이든 차 한 대 완성하면 됐어요.” (원영의 구술)
이처럼 일본 자동차를 다시 조립하며 시작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세계 경제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 인천문화재단이 기획하고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이 지난해 6월부터 진행한 ‘인천 자동차 산업사 구술채록’ 프로젝트가 마무리돼 최근 구술집 ‘인천의 자동차, 그 질주의 여정’이 나왔다. 구술에 참여한 15명 가운데 상당수는 대우자동차 이전 부평공장에 입사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다시 태어나도 자동차맨”을 외친 박기형(1977~2014년 재직) 씨는 다섯 형제가 모두 대우차 부평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으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막 떠오르던 시절, 자동차 한 대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과정이 매우 생생하게 복원된다. 프레스부에서 근무한 김양호(1978~2000년 재직) 씨, 도장부에서 활약하며 폴란드 공장 도장 책임자를 맡기도 한 양인모(1977~2009년 재직)씨 등의 현장 이야기는 르망, 프린스, 에스페로,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대우차 시절 ‘생산 매뉴얼’을 듣는 것처럼 세세하고 꼼꼼한 기록이다.
대우차 홍보실 의전팀장으로 대우 김우중(1936~2019) 회장을 수행했던 이식문(1979~2014년 재직) 씨를 통해서는 1990년대 대우차의 기업 문화를 각종 자료와 함께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성재(1986~2018년 재직), 김창곤(1993~현재 재직), 이택주(1978~1985년 재직)씨 등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대우차의 흥망성쇠와 정리해고 등 노동운동사에 대해 증언했다.
다른 분야, 다른 시각의 이야기들이지만, ‘자동차맨’이라는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은 공통분모였다. “내가 만든 차”라는 표현을 구술 속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술 작업에 참여한 윤진현 문학박사는 “구술자 모두 노동자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이 무척 높았으며,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다닌 게 아니라 주인의식도 강했다”며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은 김우중 회장에 대해서도 재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