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전후로 분열·방향성 잃고 출구 못찾아
지금 필요한건 힘 빼고 타석에 올라가는 일
국민 속으로 내려가 땀 흘리고 신뢰 쌓아야
돌이켜보면 정치부 기자로 살아온 시간도 길지만, 보수정당을 출입한 세월도 유독 길었다. 민자당(민주자유당) 시절 여의도에서 처음 명함을 내밀었고 총선과 대선, 민선 1기 지방선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염정치의 바닥이라 불렸던 ‘차떼기’ 현장을 목격했고, 그 죗값처럼 이어진 천막당사도 취재했다. 굴곡의 정치현장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공허한 체험은 처음이다. 기자 인생의 끝자락에서, 보수정당의 극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들이 좋아서라기보다 정치가 최소한의 균형과 견제 장치를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에 애정을 거두기 힘든 시간이다.
야구로 치면 지금 국민의힘은 주자 없는 9회 말 투아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탄핵,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출범. 정권은 교체됐고 보수 진영은 어둠의 터널에 갇혔다. 탄핵 전후로 보수는 분열했고 방향을 잃었으며,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올해 6월 지방선거라는 또 하나의 결전은 이미 시작됐다.
대략 6회까지의 흐름은 그들에게 ‘화양연화’였다. 2022년 정권 인수 이후 지방선거 승리로 기세를 올렸고 한미정상회담과 나토정상회의, 방산외교로 이어진 외교무대는 연속 안타와 장타를 터뜨리는 장면처럼 이어졌다. 미 의회 연설과 백악관 만찬에서 “A long long time~”을 열창하며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순간은 전성기를 상징했다. 기자 역시 그 순방에 동행했다.
그러나 야구도, 정치도 전성기는 길지 않다. 정규이닝 9회 중 찬스 몇 차례, 임기 5년 중 기껏 2~3년이라는 점이다. 윤 정권의 긴장이 풀린 사이 야구로 치면 7회와 8회 야당의 집요한 공격과 내부 실책들이 겹쳤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초유의 탄핵 30건 발의와 예산 삭감과 같은 공세 속에 의료파동과 김건희 여사 논란은 연속된 실책이었다. 거대 야당의 폭주 앞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를 만회하겠다며 선택한 비상계엄은 치명적인 작전 실패다. 결국 22대 총선 패배, 탄핵, 대선 패배로 이어졌고 현재 보수는 주자조차 없는 9회 말 투아웃 신세가 됐다. 역전의 기회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야구에서 9회 말 투아웃은 끝이자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을 빼고 타석에 올라가는 일이다. 민심 속으로 들어가 국민이 던지는 공, 국민이 듣고 싶은 메시지가 들어왔을 때만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그래야 헛스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일 비상계엄에 공식 사과하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고 밝힌 것은 늦었지만 필요한 장면이었다. 당명 개정과 청년·전문가·국민공감 연대라는 ‘이기는 변화 3대 축’은 ‘역전’의 시작일 수 있다. 문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9회 말 투아웃에서 필요한 것은 대타 한 명이 아니라, 출루할 줄 아는 타자들을 모으는 것이다.
내부 분열로는 단 한 점도 만들 수 없다. 한동훈, 유승민, 이준석, 안철수, 그리고 한때 ‘남원정’으로 불리던 인물들까지, 서로 등을 돌린 채로는 만루는커녕 주자 하나 내보내기도 어렵다. 통합과 협력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점수를 내기 위한 전술이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고 참신한 전문가들로만 안된다. ‘묘목’으로 울창한 숲을 만들 수 없다.
야구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려면 먼저 만루를 만들어야 한다. 출루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자도, 데드볼도, 안타도 있어야 한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국민 속으로 내려가 땀을 흘리고 작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끝내기 한 방이 가능하다.
9회 말 투아웃에서 필요한 것은 요란한 꿈보다 욕심을 내려놓는 용기다. 야구든 정치든 준비와 결단, 그리고 비워낸 마음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극적인 순간이 완성된다. 이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면 경기는 참패로 끝난다. 쓰다 보니 기자 개인 역시 9회 말 투아웃에 서 있는 듯하다.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