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클러스터 새만금 이전

전략 아닌 소모적 정치 논쟁

균형발전, 생태계 파괴 안돼

정부는 서둘러 입장 밝혀야

임병식 순천향대 대우교수·국립군산대 특임교수
임병식 순천향대 대우교수·국립군산대 특임교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이슈가 뜨겁다. 수도권 전력 부담과 송전 문제를 빌미로 산업 구조 입지를 재편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이 처한 현실을 외면한 채 지역 이해와 정치 일정이 앞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반도체 산업은 지역 간 힘겨루기 대상이 아니며, 정치 논리로 접근할 사안도 아니다.

새만금 이전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일본 구마모토 TSMC를 예로 든다. 그러나 이는 맥락을 잘못 짚은 비교다. 구마모토 TSMC는 사업 초기 단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역할을 분담해 추진한 신규 투자 프로젝트다. 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미 수년 전 국가 전략사업으로 결정돼 토지 매입과 인프라 구축이 상당 부분 진행 중인 사업이다. 출발선이 다른 두 사례를 단순히 비교하는 건 무리다.

인공지능(AI)시대 반도체 산업은 ‘국가 총력전’ 양상이다. 미국은 반도체 법을 제정해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고, 일본은 구마모토와 홋카이도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역시 각종 제재 속에서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자립형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반도체 경쟁에서 핵심 변수는 분명하다. 기술, 인력, 공급망,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다. 공장을 어디에 두느냐보다 언제 완공해 양산 체제에 들어가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주장은 산업 전략이라기보다 소모적 정치 논쟁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수백조원을 투입해 부지 확보와 기반 시설 조성에 들어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일관성을 통한 속도전이지, 입지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토론이 아니다.

전북 정치권은 “에너지가 있는 곳으로 산업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반도체 산업 입지 문제로 단순화한 논리적 비약이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전기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 곧바로 입지가 되는 건 아니다. 연중무휴 가동, 초미세 공정, 나노 단위 전압 변동 허용치를 충족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확대해야 할 미래 전원이지만, 아직 대규모 반도체 팹의 기저 전원을 책임질 단계는 아니다. 기후 조건에 따라 출력이 크게 변동한다는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계통 안정화 실증’과 ‘반도체 생산기지 이전’을 동일 선상에서 논의하는 것도 단견이다. 실증은 기술 개발 단계 과제이고,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실험 대상과 주력 산업을 구분하지 않는 김관영 전북도지사의 주장은 정치적 선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논의에서 실종됐다는 점이다. 새만금은 토지 관할권조차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분쟁 지역이다. 이런 곳으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옮기자는 발상은 사실상 자책골에 가깝다. 새만금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최소 수 년의 공백을 감수해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수년은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시장 주도권이 바뀌는 시간이다.

전북 정치권은 이를 ‘국가 성장 경로 재설계’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핵심 산업 일정 재설정’에 가깝다. 그 비용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균형발전은 분명 중요한 국가 과제다.

그러나 기존 전략산업을 흔들어 달성할 목표는 아니다. 균형발전은 비교우위를 통해 추진해야지, 이미 형성된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빼앗는 방식’이 아니라, 다음 산업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공장을 어디로 옮길지를 두고 정치적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국가 전략 산업을 선거 쟁점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흔들리는 것은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책 신뢰다. 정부는 이번 지방 이전 논란을 촉발한 책임이 있다. 더 이상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서둘러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임병식 순천향대 대우교수·국립군산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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