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된 일상 속 품은 ‘희망’… “불가능이라도 그리고픈 결말”
‘봤던 영화를 보는 여자’ 부동산 공화국 한국 단면 표현
출퇴근 수단 ‘지하철’, 자동차 대비 문학적 완성도 높여
경기도 송탄에 사는 광고기획자 예지는 남편과 함께 서울 아파트를 분양받고, 대출 상환을 목표로 철저히 계획된 삶을 살아간다. 예지는 기나긴 출퇴근 시간 봤던 영화를 본다.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언젠가 대출을 상환하고 서울에 들어갈 자신을 믿으며 그녀는 긴 출퇴근을 견뎌낸다.
제5회 경기아트센터 경기도극단 창작 희곡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봤던 영화를 보는 여자’의 서사는 이렇게 흘러간다. 이 작품은 부동산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단면을 그린다.
한국에서 집은 더이상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투자의 대상이자 삶의 목표가 돼버린 집. 종착역에 집 한채를 두고 모든 것을 기획해 살아가는 작품 속 인물 예지의 모습은 어쩌면 한국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봤던 영화를 보는 여자’를 쓴 이민구 작가를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만났다. 이 작가는 지난 2018년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 희곡부문에서 ‘냄새가 나’로 등단했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자연스레 신춘문예에 눈길이 갔고, 졸업과 동시에 등단의 꿈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그후로 이 작가는 극단 주변을 맴돌면서 희곡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이 작가는 “문창과에서 문학적인 깊이를 배울 수 있었고 김미도 교수님을 만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주로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 나 자신과 동료, 주변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며 “거대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무력함을 작품으로 그려 대개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봤던 영화를 보는 여자’는 이 작가에게 더욱 의미있는 작품이다. 그가 발표한 이전작과 달리 등장인물이 고난과 역경을 겪고도 마음 한편에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을 그려나간다면 그중 하나는 정말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극을 썼다”며 “고통으로 결말을 맺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라 새롭게 무언가를 상상하는 작가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소재를 찾아헤매던 때였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작품 방향성의 전환점이 된 희곡으로 수상까지 하게 돼 더욱 기뻤다”고 했다.
이 작가가 ‘봤던 영화를 보는 여자’를 쓰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이 작가는 작품 개요를 구상할 때쯤 ‘어떻게 해야 집을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 작가는 “주변 사람들로 시선을 옮기니 서울에 집을 얻기 위해 경기도 전셋집을 구하는 등 저마다의 작전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며 “‘현대 세계의 일상성(앙리 르페브르)’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돼 자본주의적인 거래를 달성하기 위해 삶을 기계화하고 축소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고 희곡작품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봤던 영화를 보는 여자’ 속에는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상징적인 요소도 등장한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예지의 삶을 지배하는 ‘지하철’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타고’ ‘내리는’ 일뿐이다.
이 작가는 “이동 시간이 의미없이 사라지는 과정은 기획된 삶 속에서 사라진 일상을 상징한다”며 “극속에서 지하철과 대비되는 요소로 ‘자동차’, ‘운전’ 등이 있는데, 자동차는 상당히 개인적인 공간이고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도와 서울은 지리적인 구분일 뿐인데 한국인 중 일부는 서울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극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극을 통해 관객과 꾸준히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 작가는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작가는 그를 찾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며 “누군가가 계속해서 찾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끝으로, 글 쓰는 일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글 쓰는 일은 항상 저에게 재밌는 일입니다. 하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쓴 글이 수상하거나 관객들에게 호평을 듣다보면 또 다음 기회가 찾아오고요. 보완하고 글을 또 써나갑니다.… 금붕어처럼 무한반복하는거죠. 앞으로도 그럴거고요.”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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