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歎一聲 先弔日本(장탄일성 선조일본·큰 소리로 길게 탄식하고, 일본의 멸망을 미리 조문한다).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을 앞두고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남긴 유묵 중 하나다. 폭 41.5㎝, 길이 135.5㎝ 명주천 위 여덟 글자는 대한독립과 동양평화를 향한 의연한 절창(絶唱)이다. 창날 같은 필치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은 자멸을 불러올 것’이라고 준엄하게 경고한다. 침략자에 대한 증오를 초월한 선구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상호 협력과 공존이 필요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수결란에 스스로를 東洋志士(동양지사)라고 칭한 첫 유묵이라 가치를 더한다. 단지(斷指) 된 약지와 손바닥 장문(掌紋)은 독립과 평화에 대한 안중근의 신념으로 유독 선명하다.

이 유묵은 지난해 12월 20일 경기도박물관에서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동양지사 안중근:통일이 독립이다’, 광복 80주년 야심 차게 선보인 전시인데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원자폭탄 투하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유묵의 전시배경으로 사용한 것이다.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는 유묵과 원폭 배경은 어색하고 모순적이다. 더군다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으로 당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와 동포들도 다수 희생되지 않았나. 자칫 학부모와 학생 등 관람객에게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사실과 다르게 전달할 수 있다. 오류를 발견한 관람객들의 민원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 9일 해당 전시실을 임시 휴관했다. 원폭 버섯구름을 지우고 회색 단일 배경으로 긴급 교체했다. 20일 만에 바로잡았지만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사안이 가볍지 않다. 전시기획 전문가들이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놓쳤다는 점은 의아하다.

나라밖 문화재나 유물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난관의 연속이다. ‘장탄일성 선조일본’ 유묵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2000년이다. 안 의사가 일본제국 관동도독부 고위 관료에게 건넨 것을 그 후손이 보관해왔다. 경기도는 지난해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반환을 추진했다. 편성된 유물 구입 예산 37억원 중에서 24억원을 이 유묵을 구매하는데 썼다. 소유자와의 협상이나 국내 조율과정 어느 하나 순탄치 않다. 김광만 윤봉길의사기념센터장이 유묵을 발견한 이후 지난해 5월 영구 귀환까지 자그마치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들여 어렵사리 모셔온 유묵의 의미를 왜곡 없이 계승하는 것은 후손의 마땅한 의무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