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관측 성지’ 하점벌판의 강화천문과학관
800년 전 고려 수도 강화에도 천문관측소 설치
별자리 해석으로 왕권 옹위한 사천대 관료들
흔적 찾지 못한 고려 천문관측소 안타까움
많은 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더욱 또렷하게 관측하기 위해 도심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고는 한다. 밤에, 자연의 빛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인공의 빛을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천문대가 산 정상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화도 하점벌판은 산에 오르지 않고서도 육안으로 밤하늘의 별을 손에 잡을 듯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지’로 꼽힌다. 북쪽으로는 별립산과 봉천산이 장막을 치고, 남으로는 고려산 줄기가 막아서 인공의 불빛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곳이다. 그 하점벌판 위쪽에 강화천문과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폐교한 강후초등학교 자리에 2024년 문을 연 강화천문과학관에는 지난해 1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5~10세 어린이들이 가장 많았고, 가족 단위 또는 연인끼리 오는 경우도 있었다. 커다란 망원경으로 밤에는 별을, 낮에는 태양을 관측한다. 500㎜ 반사망원경을 갖춘 주관측실의 원형 돔이 360° 회전하고, 둥그런 하늘 문이 열리면 별과의 눈맞춤이 시작된다. 이곳이 바로 하늘과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강화천문과학관의 상징 장소다.
800년 전, 고려의 수도이던 강화에도 천문 관측소가 있었다. 사천대(司天臺), 즉 하늘을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긴 지 18년이 되던 1250년 12월, 강화도 하늘에서 관측한 천문 현상을 통해 왕권을 옹위하려던 사천대 관료들과 이를 억압한 무신 세력 간의 알력의 일단이 ‘고려사절요’에 기록돼 있다.
당시는 강도(江都)에 중성을 쌓은 직후였는데, 어느 날은 달이 저성(星)을 범하고, 어느 날은 방성(房星)과 상상성(上相星)을 범했다. 이를 본 사천대에서 왕에게 “달이 방성과 상상성을 범한 것은 왕에게 걱정이 있고, 상상(上相)이 베임을 당하고, 난신이 동하여 신하가 왕을 대신할 징조”라고 아뢰었다. 역모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마침 왕은 몽골 사신을 맞으러 제포궁으로 행차하려던 차였다. 왕은 일정을 취소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던 무신 세력의 대표자 최항이 사천대에서 왕에게 올린 문서를 보았다. 최항은 사천대가 망령되이 별자리의 변화를 말했다 하여 책임자 2명을 파면시켰다. 이때 이후로 일관(日官)의 아뢰는 말도 역시 폐지되었다고 ‘고려사절요’의 기록자는 꼬집었다.
해, 달, 별의 변화상을 읽어 길흉화복을 점치고 이를 통해 정치의 나아갈 바를 정하도록 하는 기관이 사천대였다. 정상적 언로가 막힌 무신정권 아래에서 사천대는 별자리를 밝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빌려 무신들을 제어하려 한 그들이 오히려 제거되고 말았다.
고려의 사천대 같은 천문 기관은 신라, 고구려, 백제에도 이미 있었다. 신라의 첨성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 시설로 꼽힌다. 신라에는 천문박사(天文博士)나 사천박사(司天博士)라는 관직이 있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경주에 있는 신라 첨성대 같은 천문 관측소가 개성에도 있다. 개성 만월대 서쪽에 있는 ‘개성 첨성대’다. 북한의 국보유적 제131호인 개성 첨성대는 고려 개국 초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변의 길이가 2.2m인 사각형 판석을 높이 2.8m의 사각 기둥 5개가 떠받치고 있는 형태다. 기둥 4개는 네 귀퉁이를, 1개는 중앙을 받치고 있다. 판석 위에 천체 관측 기구를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를 이은 조선시대에도 천문 관측 시설이 있었다. 관천대(觀天臺). 현재 서울에는 창경궁 관천대를 비롯해 2곳에 남아 있다. 경주 신라 첨성대, 개성 고려 첨성대, 서울 조선 관천대 등은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천문 관측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강화 고려궁궐 가까이에 있었을 첨성대도 개성의 첨성대와 같은 모습이었을 게 분명하다. 강화 첨성대, 그 자리가 어디인지 드러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강화천문과학관에서 관측하는 별빛은 800년 전 강도(江都) 시기 사천대 관료들이 바라보던 별빛과 얼마나 닮았을까.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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