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서 유튜브보다 시간 훌쩍

출퇴근길 카페 들러 독서·업무도

혼자선 도그마에 빠져 진척 없어

대중공간선 그들의 힘으로 일해

김예옥 출판인
김예옥 출판인

처음 가졌던 직업이 일생을 지배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습관을 보면 그렇다.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뒤에 출판사에 근무하면서도 기자처럼 일했다. 아침에 기사를 써놓고 낮에는 출입처 사람들을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취재도 하는 그 느슨한 방식이 몸에 배 있었기에 꼼꼼한 ‘출판 편집자’들은 나를 노는 사람 취급하며 거저 월급을 받아가는 것으로 여겼다.

평소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기자의 습’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을 해댔다. 뉴스를 분별해내는 게 나의 강점일 수 있는데 그런 지적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뉴스에 둔감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계엄을 거치면서 정치에 민감한 내 성격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만 그랬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루하루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까 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졸이며 뉴스에 매달렸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코트를 벗는 것도 까먹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막 올라온 뉴스 속보나 그럴듯한 제목의 동영상을 몇 개 골라본다. 거기에 빠져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메일을 체크하는 것도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잊는다. 좀 시간이 갔나 해서 보면 벌써 11시다. 그제서야 ‘아, 내가 또 이러고 있구나’ 하면서 커피를 마시러 간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에도 휴대전화로 유튜브 동영상을 켜놓고 뉴스 패널들의 정치 공방을 따라가고 있다.

점심 후 이제 일 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온다. 5분 정도 워드작업을 하는 척하다가 나도 모르게 유튜브로 넘어가 어느덧 2시간을 넘기고 있다. 일하는 시간은 하루 3시간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일거리는 쌓이고 진척은 없다. 설사 시간이 남아도 책은 한 줄도 봐지지 않는다. 인터넷신문이나 종이신문도 보지 않는다.(책을 만든다는 내가 이 지경이니 독서를 안 한다고 누구를 탓하랴!)

사무실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집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도 휴대전화를 들고 가고, 주방에서 밥을 하면서도 유튜브 동영상을 귀로 들으며, 퇴근을 해서도 저녁에 벌어진 뉴스를 추적하느라 밤 12시를 넘긴다.

스스로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문득 공간을 바꾸면 행동도 달라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카페였다. 일찍 퇴근해서 집 근처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우선 카페에 앉아 그냥 책이라도 읽자는 심정이었다. 몇 달간 매일 같은 카페의 같은 자리에 앉아 2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그렇게라도 하니 스스로 위안이 되었다. 우리나라 소설을 읽으며 작가들의 특성을 파악했다. 특히 한강의 소설집을 연달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상을 수상했는지 나름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문장의 아름다움과 집요한 문제의식이 그를 다른 작가와 변별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서 넘겨야 할 원고의 마감시간 때문에 더 이상 카페에 갈 수 없었다. 일이 발등에 떨어지니 사무실에서도 딴짓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달을 보내고 지난 연말, 다시 카페에 갔더니 주인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동안 안 오셔서 여기가 텅 빈 것처럼 허전했어요….” 나는 멋쩍었다.

지금도 여전히 카페를 간다. 지난 주에는 카페에서 출근길에 2시간, 퇴근길에 3시간씩 책의 교열을 봤다. 고시공부를 하듯 매달려 430쪽의 원고를 일주일만에 끝낸 기분은 삼삼했다.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무조건 ‘대중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서 공부하면 도그마에 빠지고 공부에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근무하는 나 같은 사람도 똑같은 처지다. 대중공간에 들어설 때 그들의 힘으로 일을 하게 된다!

/김예옥 출판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