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클레멘트코스 사업 수행
거리의 인문학 전국화 실현 순간
우리가 걸었던 길 험난했지만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소중해
강원도 고성의 아야진 해변에 서서 오래도록 바다를 응시했다. 목덜미를 훑는 겨울바람이 차고 매서웠지만, 끝없이 펼쳐진 검붉은 바다는 되레 온화하게 느껴졌다. ‘아, 세상의 깊은 것들은 이리도 따스한 것을’.
문득, 그 따스함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 차창에 눈발이 부딪쳤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마치 지난 일들의 잔상 혹은 환영처럼 다가왔다. ‘그래, 많은 일들이 있었지’. 누군가는 몹시 당황했고, 누군가는 한없이 속상해했고, 누군가는 슬퍼했던 일들. 때론 울었고, 때론 함께 웃었고.
한 해의 일들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한없이 바닥으로 꺼져갔다. 원인 모를 불안과 동요로 힘들고 아팠다. 다 해냈다는 자부심과는 사뭇 다른 감정들, 일테면 허탈감과 아쉬움, 미련 따위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연초 ‘곁과볕 인문강좌’로 출발해서 ‘디딤돌 인문학’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앞선 자의 발자국이 없으니 모든 일은 낯설고 새롭고 험난하고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예 지쳐버렸다.
2005년 국내 최초 노숙인 인문학 강좌에 참여해 첫 강의를 했다. 뒤이어 자활 인문학(2006년)과 교도소 인문학(2007년)에도 참여했다.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겼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왜 이런 강좌는 수도권에서만 진행되는가. 그 문제의식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았다. 부산역 앞에도, 광주의 거리에도, 대전역사와 건너편 골목에도 거리를 배회하며 추위와 배고픔을 호소하는 노숙인이 있다.
저소득 주민들이 참여하는 지역자활센터 역시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국 각지의 지자체마다 힘겨운 삶을 견뎌내며 자활의 의지를 불태우는 자활 참여자가 부지기수다. 교도소나 구치소는 수도권의 일부 시설을 제외하곤 으레 지방의 격지와 오지로 밀려나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 ‘곁’이 되어줄 수 있기를 오래도록 바라왔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한국형 클레멘트코스’ 사업공모를 했다. 나름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에 더해 그 일은 곧 인문공동체 책고집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 제안서를 쓰고 공모에 지원하기 위해 국내외 자료를 끌어모으고, 취지와 의미를 되새기고, 다양한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또 물었다. 마침내 사업을 수행하게 되었을 때는 꿈이 이루어진 듯 뿌듯했고, 자신감도 충만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의 53개 시설을 섭외했다. 교정시설 16개소와 노숙인 시설 18개소, 지역자활센터 19개소였다. 명실공히 거리의 인문학의 전국화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국의 노숙인과 교도소 수용자와 지역의 저소득 주민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없던 길을 내는 일이었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말이다. 이어 가보자. 사람은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서 다시 사람을 만난다. 길은 여행으로 이어진다. 여행이란 안온함을 좇는 대신 불안과 동요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기 속에 좁게 틀어박혀 자족하기보다 설사 불안과 동요가 있더라도 타자와의 만남을 즐기는 것이다. 세계의 다양성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여행은 다시 만남으로 귀결된다. 세계의 다양성과 만나는 일, 새롭고 낯선 것들을 경험하는 일, 삶의 깊이를 추구하는 일. 그 모든 일은 길 위에 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올해 우리가 걸었던 길은 유난히도 험난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 만남은 더없이 소중하다. ‘팬지문학상’을 통해 길어 올린 핍진한 삶의 이야기들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여,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아니 우리가 만들어낼 새 길에서 다시 만나자.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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