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가장 오래 재위한 고종의 무덤 홍릉
무신정권기 최씨 일가의 횡포에 무력했던 왕들
유년시절 부친 강종과 함께 강화도 유폐 경험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으로 위(位)를 보전”
일제강점기 도굴 흔적 홍릉, 공식 발굴 필요
국가유산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고려에서 가장 오랜 기간 왕위를 지킨 고종(1192~1259, 재위 1213~1259)의 무덤이다.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던 그때 그는 왕이었다. 그는 강화에 왕으로 와서, 강화에서 왕으로 죽었다. 그러므로 홍릉이 차지하는 위치는 강화에서는 아주 특별하다.
눈이 내리다 그친 지난 19일 낮 홍릉. 햇살 받은 왕의 묘역은 하얀 눈이 그대로인 곳과 눈이 녹아 겨울 잔디가 드러난 곳이 뚜렷이 구분되었다. 아래에서 본 봉분 쪽은 눈이 다 녹아 있었으나 석인상과 혼유석이 있는 곳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햇빛 잘 드는 쪽을 골라 봉분을 앉힌 거였다. 묘역 주변은 죄다 암반지대인데, 그 시대 일꾼들이 산일을 하느라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겠다 싶을 만큼 가파르고 돌이 많다.
묘역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탁 트였다. 동남쪽 염하를 지나 저 멀리 인천 시내까지 늘어선 섬들과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죽어서도 해 뜨는 강화의 산하와 들녘 그리고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강화에서 이만한 묫자리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최씨 무신정권 시기 고려의 왕들은 왕의 지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최씨 일가가 왕의 목숨까지도 맘대로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종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46년을 눈칫밥 먹으며 ‘가늘고 길게’ 버텼다. 1259년 6월 그가 죽었을 때, ‘고려사절요’는 “임인일에 왕이 유경의 집에서 훙(薨)하였다”고 썼다. 왕이 왜 죽음을 앞두고 신하 유경의 집으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때는 죽어서도 사람을 차별했는데, 황제의 죽음은 붕(崩)이라 칭했고, 왕후(王侯)의 경우 훙이라 일컬었다. 관료들은 졸(卒), 서민들은 사(死)라 했다.
고려 후기 문신 이제현(1287~1367)은 고종을 가리켜 “학문으로 그 덕을 쌓고, 두려워 하고 조심하는 것으로 그 위(位)를 보전하였으니, 백성이 기뻐하고 하늘이 도운 것”이라 했다.
‘고려사절요’의 사관은 “당시의 나라 형세가 심히 위태로웠다. 그러나 왕이 조심하여 법을 지키고 수치스러운 것을 참았기 때문에 왕위를 보전했다”고 적었다.
고종 재위 45년, 그러니까 고종이 죽기 1년여 전인 1258년 3월에 60여 년을 이어 온 최씨 무신정권의 시대도 끝이 났다. 고려 무신정권을 무너뜨릴 때 공신 중 한 명이 고종이 눈을 감을 때 머물렀던 유경(1211~1289)이었다.
고종은 세상을 뜨기 3개월 전부터 많이 아팠다. 그해 3월, 왕이 병이 있다는 이유로 죄인을 사면했으며, 4월에는 위독해지자 가까운 신하들을 신사(神祠)와 도전(道殿)에 보내 병이 낫기를 기도하게 했다. 술사(術士)를 불러 왕업을 연장할 방도를 묻기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고종의 죽음을 1개월 앞두고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상한 일도 생겼다. 자운사(慈雲寺) 연못에 붉은 물거품이 일었는데 마치 피처럼 붉었다고 ‘고려사절요’는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을 본 어떤 이는 ‘신라 때에도 어떤 절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해에 왕이 죽었다고’ 말했다.
고종은 유년시절을 강화에서 보내야 했다. 무신정권을 세운 최충헌에 의해 할아버지 명종이 폐위되자 부친인 강종과 함께 어린 고종도 강화에 유폐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는 왕족임에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감에 늘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생활이 몸에 익숙했을 거였다.
홍릉 아래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 있다. 홍릉은 아직 공식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23년 사진을 보면, 능역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그때 사진에는 봉분을 둘러싼 난간석이 보이는데, 지금은 그 난간석 4개를 봉분 아래에 따로 모아 놓았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여러 차례 도굴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홍릉을 언제 어떻게 발굴해 재정비할지는 정부의 숙제로 남아 있다. 홍릉을 내려오며, 남과 북의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하고 발굴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