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 되어준 이가 칼이 될수도

연예인-매니저… 정치인-보좌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

‘디지털 문명’ 시기, 관계 역전도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어른이건 아이건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라’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종묘와 궁궐 앞에 세워 놓은 ‘하마비’(下馬碑)라는 비석이지요. 왕이나 성현들의 출생지 혹은 무덤 앞에 세워 놓기도 했습니다. 또 성균관이나 각 지방의 문묘 앞에도 세웠습니다.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감으로써 예를 갖추어 존경을 표하라는 뜻이었지요. 수원에도 여러 곳에 하마비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성행궁입니다. 행궁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홍살문과 신풍교 앞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행궁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수원에서 크기가 가장 큽니다.

말에는 견마잡이가 있고, 가마에는 가마꾼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자동차로 치면 운전기사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말이나 가마의 주인들이 볼일을 보는 동안 견마잡이나 가마꾼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중에는 주인들의 뒷담화도 끼어 있었을 겁니다. ‘우리 주인 마님이 요즘 기생에게 푹 빠져서 집에 잘 안들어 가신다’, ‘우리 마님은 이번에 좋은 자리로 옮기려고 밤마다 정승들 댁을 방문하신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겠지요. 가마꾼들의 뒷담화는 나중에 하마평(下馬評)이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이 단어가 등장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라고 하지만, 그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가 새로운 단어로 탄생한 것이지요.

수사기관에서 높은 분들이나 재력이 뛰어난 분들에 대한 수사를 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조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운전기사나 수행비서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사대상이 된 분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누구를 만나는지를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엔 자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지만 나중엔 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때문에 평소 높은 분들이 수족이 되어준 분들을 어떤 태도로 대해주었는지는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누구에게는 칼이, 누구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여러 사건에도 이런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연예인들과 매니저들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매니저의 힘이 셌던 예전과는 달리 현재는 연예인들이 절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니저나 다른 스태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분출하게 되지요. 대중은 그런 연예인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국회 보좌진과의 관계가 대표적이지요. 의원이 보좌진의 채용과 면직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인간관계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넘어 개인적인 일탈에 마저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끌어들이는 것이지요. 요즘 말로는 갑질이라고 일반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디지털 문명이 발달한 시기에는 관계가 역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방에 CCTV가 깔려 있고, 버튼 하나면 상대방의 언행이 모두 녹음되거나 촬영될 수도 있거든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기본권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요. 직업의 고귀함이나 비천함, 지위의 높음이나 낮음, 재산의 많음이나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권리입니다. 요즘의 사태에 비추어 보면, 내가 급여를 준다거나 임면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하마평은 이제 견마잡이나 가마꾼의 뒷담화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소한 관계에서부터 자신의 행실이 드러나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좋은 하마평을 가진 사람,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람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니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