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섭 인하대 교수 기증 ‘현존 최고령’

순천시립박물관 소장본보다 12년 앞서

한글 세로쓰기 형식… 두 명 이상 참여

한국근대문학관이 기증받은 ‘유황후전’ 필사본 표지(왼쪽)와 본문 부분.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이 고소설 ‘유황후전’(劉皇后傳)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전 2권)을 기증받았다. 문학사적·자료사적 가치가 큰 자료라는 평가다.

25일 한국근대문학관에 따르면 최근 정일섭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로부터 기증받은 ‘유황후전’ 필사본은 1887년(丁亥年 閏四月)이라는 필사 시기가 명시돼 있어 제작 연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재까지 국내 유일본으로 알려진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본(1899년)보다 12년 앞서 필사된 자료다. ‘유황후전’ 연구의 시기적 범위를 확장하는 핵심 자료라는 게 한국근대문학관 측 설명이다.

‘유황후전’은 적강(謫降)한 여주인공 유태아가 고난을 딛고 황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궁중 수난담, 신분 상승, 애정 서사가 결합된 조선 후기 고전소설이다. 복합 서사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1926년 대창서원·보급서관을 통해 활자본으로 간행되기도 했다.

고전소설 ‘유황후전’의 줄거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 챗GPT(5.2 버전)에 ‘유황후전’ 관련 정보와 줄거리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고전소설 ‘유황후전’의 줄거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 챗GPT(5.2 버전)에 ‘유황후전’ 관련 정보와 줄거리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유황후전’은 황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주인공 유태아(황후가 된 인물)를 향한 황태자의 순애보, 유태아와 가까워지기 위해 여장을 하고 접근하는 황태자, 후궁 만귀비의 질투와 모략 등 현대 TV 드라마 못지 않은 자극적 내용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같은 이야기에 대한 독자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한국근대문학관이 기증받은 ‘유황후전’ 필사본은 한글 세로쓰기 형식으로 작성됐다. 궁체 계열의 단정한 필체와 비교적 간결한 서체가 함께 나타나는 점을 고려하면 2명 이상의 필사자가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필사 양상은 조선 후기 민간에서의 고소설 향유와 필사 관행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문학관은 책에 일부 얼룩과 변색이 있으나, 판독에는 큰 지장이 없으며 전반적인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필사본의 서체와 구성은 고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문헌학, 고전소설학, 서지학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소설은 ‘한국식 이야기’의 원천이다. 영웅 이야기, 가족 이야기와 그 가운데 피어나는 사랑, 질투, 복수 이야기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재다. 남편을 대신해 옥에 갇힌 열녀 ‘곽씨열녀전’, 계모와 전처 소생 간 갈등을 그린 ‘조한림전’ 등은 오늘날 TV 드라마에서 볼 법한 내용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나온 ‘여성 영웅담’들은 가부장제에 맞서고자 했던 그 시대 여성들의 숨겨진 욕망을 엿볼 수도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이번에 기증된 ‘유황후전’ 필사본을 비롯해 총 65점의 고소설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문학관이 보유한 ‘홍길동전’ ‘삼국지’ ‘유충렬전’ 등 고소설은 오는 5월31일까지 진행 중인 기획전시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소설 원본뿐 아니라 AI(인공지능)를 활용해 과거 소설을 낭독하는 전문 이야기꾼 ‘전기수’가 고소설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AI를 통해 영상화한 고소설 줄거리, ‘토끼전’(출토전)이나 ‘구운몽’ 속 장면을 활용한 엽서·책갈피 만들기 등 체험 코너도 경험할 수 있다. ‘K-콘텐츠’는 과거와 현재의 융합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