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삶이 중요했던 월미도 마을
빨강·파랑 조명 교차 강렬한 폭격 장면
인천상륙작전 뒤에 가려진 민간인 희생
빨간색 조명과 파란색 조명이 강렬하고 어지럽게 교차하는 가운데 총성과 포성이 마구 울린다. 극 중 등장인물인 ‘월미도 사람들’ 거의 모두가 무력하게 스러진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숨을 거두는 연극이 얼마나 있었을까.
지난 23~25일 인천 신포동 떼아뜨르 다락 소극장에서 극단 토끼가 사는 달이 상연한 연극 ‘월미도, 1950’의 클라이맥스에서 색깔을 나눠 마치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듯 빠르게 교차하는 빨강, 파랑 조명은 이 비극의 원인이 단순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빨간 편인가, 파란 편인가’라는 한국전쟁 서사의 익숙한 구도가 ‘월미도, 1950’에서는 매우 옅다. 해방 이전부터 함경도, 충청도, 일본 등지에서 건너온 이주민과 토박이들이 어울려 터전을 가꾼 바닷가 마을이었다. 철이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 인민군이 월미도에 들어오자 붉은색 완장을 차고 반동분자를 색출한다며 눈에 불을 켜지만, 주인공 남우, 홍자, 행주댁, 할배, 일본인 핏줄이 섞인 할배의 손녀 미에코 등 이웃과 오래 지속해 온 공동체를 유지한다.
철이는 특정한 사상·이념을 지향하며 붉은 색 완장을 찬 게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에 다니던 그의 아들 광수가 한강 다리 폭파 당시 큰 부상을 입고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뜨게 된 것에 대한 복수심이 강했을 뿐이다. 철이와 마을 사람들 사이 묘한 긴장감이 돌다가도, 철이가 ‘적의 식량’이라고 비난한 씨레이션(미군 전투식량)을 결국 함께 조리해 먹는 장면은 진중한 극 중에서 흔치 않게 웃음을 유발한다. 이념과 전쟁보다 삶이 우선인 월미도 마을이었다.
남우의 아들 해동이는 홀로 피란을 떠났다가 ‘월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켈로부대에 입대한다. 그가 선택한 길은 월미도를 전쟁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지만, 그렇게 월미도 마을에 도움을 주리라 믿었던 그의 임무는 결국 무차별 폭격이라는 비극을 초래한다. 극 말미 월미도 폭격의 유일한 생존자로 보이는 해동의 절규가 바로 이 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다. 단출한 소품과 무대를 배우들의 호연으로 채웠다.
1950년 9월10일 미 해병대항공단 항공기들이 월미도 동쪽 지역에 네이팜탄 95개를 투하하고 육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120가구 약 600여명이 살던 마을에서 최소 주민 100명의 희생됐다고 조사됐다. 이른바 ‘월미도 폭격 사건’이다. 유엔군은 9월13일부터 14일까지 월미도와 인천항 일대에 함포 사격과 공습을 진행했다. 이튿날 한국전쟁 초반 전세를 역전한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됐다. 연극 ‘월미도, 1950’은 인천상륙작전에 가린 ‘월미도’를 호명해 그 뒤에는 희생된 월미도 주민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월미도뿐이었을까. 인천상륙작전 전후로 덕적도, 영흥도를 비롯한 인천 섬에서는 거주민 학살이 일어났고, 인천 시내는 무차별 포격으로 무너져내렸다. 이번 공연의 제작·연출을 맡은 유나영 극단 토끼가 사는 달 대표는 “현재도 어딘가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문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그 피해 역시 고스란히 누군가에게 남겨지는데, 이 모습을 통해 그들에게 또한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게끔 하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대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이 이 작품을 제작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월미도 폭격 사건 이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들이 모인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회도 이번 공연을 관람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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