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쇄·출판술, 판 뒤집다
팔만대장경 판각 ‘중흥시킨 고장’
‘상정예문’ 금속활자 이용해 제작
인쇄 단체·출판사들 기념비 합심
강화는 세계 인쇄·출판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곳이다. 팔만대장경이 이곳에서 판각됐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출판한 곳 역시 강화이다. 그리하여 강화는 세계 인쇄 출판 문화의 성지로 가꿀 만한 곳이다.
강화대교 부근 갑곶돈대 옆 강화전쟁박물관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커다란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사용해 책을 찍어낸 것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도로 쪽 앞면에는 세계에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내놓은 곳이라는 의미의 ‘世界金屬活字發祥中興之地’, ‘금속활자문화를 일으킨 땅’이라는 두 가지 문구를 14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창안해 낸 활자체를 이용해 양면에 걸쳐 새겨 놓았다.
이 기념비는 왜 강화에 세워졌을까. 뒷면에 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고려는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맨 처음 발명하였다. 이것이 중국 아라비아 독일까지 퍼져나갔으며 이곳 강화는 13세기 금속활자 인쇄술을 중흥발달시킨 고장이다. … 이에 조상들의 슬기를 기리기 위해 이곳 강화에 이 비를 세우는 바이다.’
1985년 연세대학교 사학과 손보기 교수가 쓴 비문의 일부이다.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 강화에서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출판했다는 내용은 이규보(1168~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근거한다. 이규보는 ‘상정예문(詳定禮文)’을 새로 편찬하면서 그 경위를 밝히는 글을 지었다. 거기에 보면, 고려 제17대 국왕인 인종 때에 17명의 신하들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예문을 모아 새로이 50권을 만들어 ‘상정예문’이라 이름했다. 그 책이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글자가 없어지고 해서 최충헌(1149~1219)이 ‘상정예문’ 두 본을 따로 만들어 한 본은 예관(禮官)에게 보내고, 나머지 한 본은 집에 간수했다. 그러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길 때에 예관에서 그것을 챙기지 못해 최 씨 집안에 보관해 온 한 부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최충헌의 아들 최우(?~1249)가 주자(鑄字, 금속활자)를 사용해 28본을 인출해 여러 기관에 나누어 간수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규보가 쓴 ‘주자를 사용해 28본을 인출했다’는 얘기가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출판한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천도가 이루어진 1232년에서 이규보가 세상을 뜬 1241년 사이에, 강화도에서 금속활자 출판이 있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강화 천도 초기인 1234년쯤에 ‘상정예문’ 금속활자 출판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고금상정예문’이라고도 한다.
강화전쟁박물관의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를 세울 때 뜻을 같이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강화에서 펼쳐낸 금속활자 인쇄술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가 단번에 드러난다. 대한인쇄문화협회,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연합회, 대한출판문화협회, 서울특별시인쇄공업협동조합 등 인쇄 출판 단체와 통문관, 교문사, 을유문화사, 일조각, 동화출판공사, 범우사, 열화당, 지학사 등 당시 국내 대표적 출판사가 참여했다. 또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단국대학교도 이름을 올렸다.
강도(江都) 시기 이전에도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를 이용한 출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1세기 송나라 승려 남명천이 불도를 깨친 바를 노래한 책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1239년 9월에 최우가 목판본으로 찍어낸 바 있는데, 이 목판본의 바탕이 된 책이 금속활자본이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 이전에 출판했을 터인데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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