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쇄·출판술, 판 뒤집다

팔만대장경 판각 ‘중흥시킨 고장’

‘상정예문’ 금속활자 이용해 제작

인쇄 단체·출판사들 기념비 합심

인천 강화전쟁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2026.1.2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인천 강화전쟁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2026.1.2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강화는 세계 인쇄·출판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곳이다. 팔만대장경이 이곳에서 판각됐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출판한 곳 역시 강화이다. 그리하여 강화는 세계 인쇄 출판 문화의 성지로 가꿀 만한 곳이다.

강화대교 부근 갑곶돈대 옆 강화전쟁박물관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커다란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사용해 책을 찍어낸 것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도로 쪽 앞면에는 세계에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내놓은 곳이라는 의미의 ‘世界金屬活字發祥中興之地’, ‘금속활자문화를 일으킨 땅’이라는 두 가지 문구를 14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창안해 낸 활자체를 이용해 양면에 걸쳐 새겨 놓았다.

이 기념비는 왜 강화에 세워졌을까. 뒷면에 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고려는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맨 처음 발명하였다. 이것이 중국 아라비아 독일까지 퍼져나갔으며 이곳 강화는 13세기 금속활자 인쇄술을 중흥발달시킨 고장이다. … 이에 조상들의 슬기를 기리기 위해 이곳 강화에 이 비를 세우는 바이다.’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앞면에 우리나라 역대 활자체로 새겨진 ‘世界金屬活字發祥中興之地’, ‘금속활자문화를 일으킨 땅’이라는 두 가지 문구가 선명하다. 2026. 1. 2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앞면에 우리나라 역대 활자체로 새겨진 ‘世界金屬活字發祥中興之地’, ‘금속활자문화를 일으킨 땅’이라는 두 가지 문구가 선명하다. 2026. 1. 2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1985년 연세대학교 사학과 손보기 교수가 쓴 비문의 일부이다.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 강화에서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출판했다는 내용은 이규보(1168~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근거한다. 이규보는 ‘상정예문(詳定禮文)’을 새로 편찬하면서 그 경위를 밝히는 글을 지었다. 거기에 보면, 고려 제17대 국왕인 인종 때에 17명의 신하들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예문을 모아 새로이 50권을 만들어 ‘상정예문’이라 이름했다. 그 책이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글자가 없어지고 해서 최충헌(1149~1219)이 ‘상정예문’ 두 본을 따로 만들어 한 본은 예관(禮官)에게 보내고, 나머지 한 본은 집에 간수했다. 그러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길 때에 예관에서 그것을 챙기지 못해 최 씨 집안에 보관해 온 한 부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최충헌의 아들 최우(?~1249)가 주자(鑄字, 금속활자)를 사용해 28본을 인출해 여러 기관에 나누어 간수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규보가 쓴 ‘주자를 사용해 28본을 인출했다’는 얘기가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출판한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천도가 이루어진 1232년에서 이규보가 세상을 뜬 1241년 사이에, 강화도에서 금속활자 출판이 있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강화 천도 초기인 1234년쯤에 ‘상정예문’ 금속활자 출판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고금상정예문’이라고도 한다.

강화전쟁박물관의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를 세울 때 뜻을 같이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강화에서 펼쳐낸 금속활자 인쇄술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가 단번에 드러난다. 대한인쇄문화협회,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연합회, 대한출판문화협회, 서울특별시인쇄공업협동조합 등 인쇄 출판 단체와 통문관, 교문사, 을유문화사, 일조각, 동화출판공사, 범우사, 열화당, 지학사 등 당시 국내 대표적 출판사가 참여했다. 또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단국대학교도 이름을 올렸다.

강도(江都) 시기 이전에도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를 이용한 출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1세기 송나라 승려 남명천이 불도를 깨친 바를 노래한 책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1239년 9월에 최우가 목판본으로 찍어낸 바 있는데, 이 목판본의 바탕이 된 책이 금속활자본이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 이전에 출판했을 터인데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