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식단 지침에 ‘김치’ 포함
고유의 ‘정’ 품은 음식인 것 알까
맛집 탐방속 어머니 맛 사라져가
설엔 가족과 밥상 온기 느껴보길
요즘 젊은이들 문화 중 하나가 ‘맛집’ 탐방이다. SNS에서 본 식당을 찾아 상당한 시간을 들여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며 후기를 남긴다. 이제 그들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 되었고, 때로는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식당들도 이런 것을 의식해서인지 음식 맛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듯하다. 실패 없는 맛, 정량화된 맛, 그리고 균일한 맛. 어디에서 먹어도 비슷한 만족을 주는 이른바 표준화된 맛이다. 그런데도 좋은 식당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가끔 마음이 허전할 때가 있다. 분명 맛은 있는데, 왠지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국 보건당국의 ‘2025~2030년 미국인을 위한 식단 지침(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에 김치가 공식 권장 식품 목록에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치가 장내 미생물 균형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발효식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비만과 만성질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김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치는 단지 건강한 음식만이 아니라, 우리가 간직한 고유한 정과 가족 관계의 기억을 품고 있는 음식인 것을 미국인들도 알고 있을까. 어릴 적 먹던 밥상이 떠오른다. 특별한 요리가 아니어도 그 자리는 늘 따뜻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투박한 국, 늘 비슷했던 반찬들. 그 음식들은 대단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했다.
어머니의 김치 맛은 상점에 진열된 표준화된 김치의 맛이 아니다. 어떤 때는 맵고, 어떤 때는 유난히 시큼했으며, 어떤 날에는 젓갈 향이 더 진했다. 그러나 그 모든 맛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 맛은 늘 살아 있었고, 우리에게 숨 쉬듯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음식은 단순히 ‘맛’을 넘어 마음의 고향이 되고, 추억이 되고, 정이 된다. 그 음식들은 우리에게 “괜찮니? 잘 지내니?”라고 묻는 또 하나의 기억이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사회에서 지탄받던 이들과의 식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행위였다. 어머니가 차려 준 밥상 역시 가족 관계라는 소중함이 담겨 있으니 이 두 식탁의 공통점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한 끼가 아니라, 서로를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나누는 자리라는 데 있다.
오늘날 젊은이의 ‘맛집’ 탐방 문화 속에는 어머니의 맛은 점점 사라지는 듯해 아쉽다. 어머니의 음식은 마음을 담은 밥이고, 국이었고, 김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안에 담긴 자식을 향한 사랑과 희생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 “급하게 먹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어머니의 말은 우리 삶의 별과 같았다. 인생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세상을 조급하게 보지 않아도 되며, 천천히 유연하게 살아도 된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 밥상은 탐욕의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관계를 쌓는 자리였음을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설이 코앞이다. 바쁜 삶, 달라진 생활 리듬, 점점 변해 가는 가족에 대한 가치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우리가 편리한 삶을 선택하는 동안, 어머니의 목소리가 멀어진다면 그 자리에는 외로움만 남을지도 모른다.
이번 설에는 고향의 가족과 함께 밥을 먹어보면 어떨까. 함께 둘러앉아 밥상의 온기를 느껴보면 어떨까. 그 온기는 우리만이 간직한 맛과 정, 그리고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보다 누구와 먹고 있는가를 더 자주 물어야 할지 모른다. 맛은 쉽게 설명되고 쉽게 잊히지만, 정과 함께한 관계의 시간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새해에는 우리의 식탁으로부터 다시 관계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음식이 다시 마음의 언어가 되고, 밥 한 끼가 안부가 되기를. 어머니의 밥상처럼, 말없이도 마음이 전해지는 시간이 다시 우리 곁에 오기를 희망한다.
/김영호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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