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집에서는 소를 키웠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 꼴을 뜯기거나 여물을 주거나 외양간 청소하는 일은 막내인 내 차지였다. 어른들은 소를 일꾼으로 부리려고 키웠는데, 나에게 소는 친구였다. 아무도 없는 야산에 소를 끌고 올라 풀밭 한가운데 말뚝을 박아 놓으면 소는 알아서 풀을 뜯었다. 소는 코뚜레와 연결한 끈의 길이만큼 풀밭을 이발하듯 원둘레를 그려 놓았다. 그 사이 나는 아주 가끔 책을 읽기도 했지만, 주로는 태권브이도 타고, 주먹대장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했다.
어른들은 말썽이나 꾀를 부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소를 좋아했는데, 새끼를 잘 배고 송아지 잘 낳는 소 또한 아꼈다. 쟁기질은 가난한 시골집에 노동력이라는 경제적 대가를 주었으며 송아지는 그 자체로 현금이었다. 어른들은 자식 학비를 주로 송아지를 팔아 마련했다. 그러니 어른들은 소가 아프게 되면 수의사를 부르고 하느라 마음 고생이 여간 아니었다.
어른들에게 소는 집안의 제1의 경제적 가치였지만 나에게 소는 그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식구이자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아이 주먹만큼이나 큰 어미소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보았다. 나는 이튿날에야 알았다. 송아지가 팔려나간다는 것을. 어미소는 그렇게 새끼를 빼앗기고 나서 며칠간이나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런데 어미소는 새끼가 팔리는 것을 어찌 미리 알았을까. 그것이 신기했다.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알아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보았던 소의 눈에 맺힌 눈물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소를 키우는 농가에 소는 소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식구 같은 존재다. 며칠 전 올해 처음으로 강화도에서 소 구제역이 발생해 그 집에서 키우던 243마리나 되는 소를 한꺼번에 살처분했다. 피해 농가에는 경제적 손실과 보상 문제를 떠나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구제역(口蹄疫)은 입안 점막이나 발톱 사이에 물집이 생기는 전염병이다. 발굽이 둘로 갈라진 소, 말, 돼지, 양, 염소 같은 동물이 주로 걸린다. 구제역 같은 전염병의 역사도 무척 길다. 조선시대에도 수천 마리씩 떼죽음을 당한 경우가 있다. 아직까지도 뾰족한 치료법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요새는 그나마 백신으로 예방은 가능하다고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가축 전염병이 더 번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정진오 국장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