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에 지쳐 고시원에서 계란 한판에 손댄 ‘코로나 장발장’, 편의점에서 컵라면 등 1천950원 어치를 훔친 60대, 무인점포에서 빵과 현금 4만원을 가져간 30대. 이들은 모두 과거 수차례 동종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실형이라는 엄한 죗값을 물었다.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교도소 지붕 아래서 끼니를 해결하려는 ‘장발장’이 많다면 서글픈 일이다.
수원지법 법정 피고인석에 선 40대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노숙인 A씨도 같은 처지였다. 지난해 4월 택시비 7천300원을 내지 않았고,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무전취식했다. 출소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또다시 사고를 쳤다. 당시 그의 심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게 교도소로 다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2001년부터 동종범죄를 39차례나 저질러 교도소를 수십차례 들락날락했다. 그가 마음을 다잡은 건 지난해 출소 후 찾은 노숙인시설에서였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자포자기했던 20여년 세월이 뼈아프게 후회됐단다. 앞으로는 재범하지 않고 새 삶을 살겠노라고 각오를 다졌다.
A씨의 사연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할 수 없다. 취약층 보호대책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과연 39번이나 범죄를 저지르며 삶을 연명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거리로 내몰린 장애인에게 사회는 어떤 손길을 내밀었을까. 복지의 울타리 밖 취약층은 전과자로 낙인찍힌 채 갱생의 돌파구를 찾기 힘들었을 테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범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다. A씨는 구멍 난 제도가 만든 또 한 명의 장발장일지 모른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속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철창에 갇혔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의 자비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실판 장발장’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갱생의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부와 권력에 너그럽고 약자에 호통치는 법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냉소로 굳어진 지 오래다. 천원짜리 초코파이 절도사건에 5만원 벌금을 매긴 1심은 맥락 없이 법만 들이댄 기계적 판결이었다. 엄벌에 의한 단죄가 우선이지만 범죄 예방과 회복도 매우 중요하다. 추상같은 법에도 따뜻한 관용이 필요하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오늘 법원이 선고한다. 판결 내용이 궁금하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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