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논술고사를 하루 앞두고

픽업해주기로한 작은 외삼촌과

맥주 인사불성… 합격 미스터리

장례마친 엄마에 이야기해줄 참

김서령 소설가
김서령 소설가

아이 셋을 키우던 엄마는 아무래도 버거워 할머니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한 녀석만 서울로 데려가 한동안 봐 달라고 말이다. 셋 중 누가 할머니를 따라갈지는 사실 말하지 않아도 빤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폐 끼치지 않을 만큼 얌전한 녀석. 할머니 입장에서도 그다지 손이 많이 가지 않을 얌전한 녀석. 바로 나였다. 다섯 살 나는 열 밤 자고 데리러 가겠다는 엄마의 말에 깜빡 속아 할머니를 따라 쫄래쫄래 서울로 갔다. 엄마는 일 년이 지나서야 나를 도로 데려갔다. 이후로도 몇 번 그랬고, 아무 데서나 둘째가 제법 잘 지낸다는 걸 알아챈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방학 때면 혼자 할머니 집엘 보냈다.

할머니가 새벽기도 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도 그랬고, 성경책만 온종일 읽는 할머니 때문에 나는 성경으로 한글을 배웠다. 할머니는 어린이 주일예배 대신 나를 늘 옆에 앉혀 놓아서, 거의 매일 교회에 가면서도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뿐이었다.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일상이었다.

삼촌이 둘이었다. 둘 다 결혼해 따로 살고 있었지만 큰삼촌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나를 보러 들렀다. “가자!” 삼촌의 말에 주섬주섬 따라나서면 목적지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혹은 청계천의 헌책방 골목이었다. 모범생 출신 큰삼촌은 그렇게 로댕 전을 나에게 처음 보여주었고, 헌책방 골목에서 마음껏 동화책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알뜰한 엄마는 집마다 다 있던 계몽사 세계명작동화도 사주지 않았는데, 읽고 싶은 건 다 사도 좋다니. 나는 이제 걸음마를 막 시작한 큰삼촌의 딸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이 꼬꼬맹이를 무슨 박물관에 데려가?” 그렇게 큰소리치며 우당탕 소란스럽게 할머니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작은삼촌이었다. “거기 가면? 뭐 재밌어? 애들은 애들답게 놀려야지, 박물관은 무슨!” 절대 모범생 출신이 아니었던 작은삼촌은 내 손을 부여잡고 출발했다. 놀이동산이었다. 사실 겁 많은 나는 놀이동산이 별다르게 좋을 것도 없었고, 그냥 청계천 헌책방이나 다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싫은 티도 내지 못하고 대충 솜사탕이나 뜯어 입에 넣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단 것은 질색인데 말이다.

나는 아무 때나 외갓집을 들락거렸고, 급기야 큰삼촌네나 작은삼촌네 거실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도 놀라거나 어색해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대학 입시 논술고사를 하루 앞두고 나는 큰삼촌네로 가방을 들고 갔다. “내일이 논술시험이라서요, 여기서 자고 시험 보러 갈게요.” 마침 큰삼촌이 출장 중이어서 작은삼촌이 다음 날 시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미리 왔다. “맥주 어때? 한잔하고 푹 자면 컨디션 끝내줄 텐데?” 작은삼촌의 말에 시험 치는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던 큰외숙모가 근처 치킨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작은삼촌과 큰외숙모와 수험생 나는 그날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셋 다 인사불성이 되었고, 다음 날 큰외숙모와 작은삼촌이 눈도 뜨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지하철역으로 갔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이 다 까졌다. 바지는 찢어지고 무릎에선 피가 철철 나는 채로 시험장으로 갔고, 아무래도 내가 그때 대학에 합격한 건 지금 와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논술 답안을 써 내려간 수험생이라니. 이건 여태 우리 엄마에게 비밀이다.

나는 어제 작은삼촌의 장례식에서 돌아왔다. 막냇동생을 먼저 보낸 엄마는 눈이 퉁퉁 부었고, 나는 영정사진 속 삼촌의 얼굴이 어색해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작은삼촌이 이제 없다니. 나는 삼촌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루에 하나씩 전해줄 참이다. 그중에는 엄마가 아는 이야기도 있고, 미처 몰랐던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우스운 이야기니까 엄마도 웃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계속 삼촌을 기억하면 될 것이고.

/김서령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