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대표 피아니스트 클라라
예민하고 신경질적 슈만과 결혼
그의 예술성 아내의 인고로 만개
헤르만 헤세가 말한 사랑과 일치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에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사랑은 모든 탁월성과 모든 이해력이고,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모든 능력이라고 한다.”(헤르만 헤세 ‘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이처럼 사랑이 인간의 가장 강한 모습을 끌어내는 정서적 경험이라면, 사랑을 해보지 않고 삶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초월적인 능력의 음악가라도 마찬가지다. 베토벤부터 쇼팽, 리스트, 말러까지, 클래식 음악사에는 사랑이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은 물론 사랑으로 삶이 좌우되었던 거장들이 숱하다.
그중 가장 회자되는 이는 클라라와 슈만이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클래식 음악 입문서나 강연의 단골 레퍼토리다. 두 사람은 주로 이렇게 소개된다.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에게 소송까지 걸고, 결국 그녀를 쟁취해 평생 뮤즈로 삼았던 ‘상남자’ 슈만. 위대한 작곡가를 위해 물심양면 희생한 ‘내조의 여왕’ 클라라.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사실의 일부를 엮어 이루어졌고 ‘잘 팔린다’. 그러나 동시에 구시대적이다. 전술한 사랑의 정의를 이해할 수 있는 현대의 우리는 이 구태한 러브 스토리 너머의 진실, 클라라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라라 요제핀 비크는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명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겸 음악 교육자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그녀는 불과 10세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해 11세 때는 유럽 연주회 투어로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그 실력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클라라의 연주에 감탄한 쇼팽이 리스트에게 편지를 써 그녀를 극찬하고 당대 최고의 음악가 멘델스존과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그녀와 함께 무대에 오를 정도였다. 그렇게 나날이 명성을 쌓아가던 클라라는 14세 때 9살 연상의 무명 작곡가 슈만을 처음 만난다. 시간이 흘러 우정은 사랑으로 변모하고 클라라는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슈만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부부의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클라라와 혼인한 기쁨에 겨워 그녀를 찬미하는 가곡까지 지어 바쳤던 슈만은 결혼 후 최악의 남자가 된다. 그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어서 클라라의 가내 연주와 작곡을 금지했으며 집 밖에서도 그녀의 행동을 통제했다. 결혼 3년 후, 슈만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13년간 증상은 점점 악화되었고 강에 투신하기까지 이른다. 치료를 위해 입원한 슈만은 46세의 나이로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클라라는 한결 같았다. 그녀는 슈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았고, 그를 이해했고, 그가 작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슈만에게 잠재되어 있던 예술성은 클라라의 인고를 바탕으로 한 사랑 없이는 결코 꽃피울 수 없었다. 슈만의 금지령 탓에 집안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었지만, 클라라는 유럽 전역의 콘서트홀에서 슈만의 작품을 연주하며 그의 음악을 세상에 알렸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누군가는 클라라가 현명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녀가 슈만 사후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했고 콘서바토리 교수로서 후학도 양성하며 존경받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또 누군가는 그녀가 슈만과 함께했던 시간을 ‘희생’이나 ‘낭비’라고 표현할지 모른다. 그러나 앞선 헤세의 말처럼 사랑이 고뇌와 인고 속 인간의 강인함의 증명이라면 클라라가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었냐는 질문에는 누구도 아니라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클라라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작품은 작곡가의 성정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클라라가 쓴 작품 중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특히 2악장 ‘Romanze’에는 생전의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선율이 흐른다. 흔들림 없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멜로디. 클라라가 이 작품을 완성한 것은 슈만을 처음 만나고 2년 후의 일이다.
/송하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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