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조국혁신당 통합론에

혹자 좋지 못한 어울림이라지만

민주정치 꾸밈 본바탕 어울리는

공자 말씀처럼 ‘文質彬彬’이길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작고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그렇다. 그는 무려 7선 국회의원이다. 본인 선거도 그렇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권의 탄생에도 공공연한 주역이었다. 그는 진보진영의 기수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진보진영 어른으로 마감한 영원한 진보 정치인이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그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다. 비록 6선이지만 15대부터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대까지 내리 당선됐다. 특히 20대 총선에서는 당시 오세훈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밀렸다. 결과는 정세균의 압승이었다. 그의 비결은 ‘전화위복’이었다. 불행하고 나쁜 일이 바뀌어 오히려 좋은 일이 된다는 사자성어가 있지만, 그보다 유권자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려 표심을 얻었다는 거다. 예컨대 매년 설날이면 지역구 어르신들에게 새해인사를 겸해 전화를 돌린다. 전화를 받은 어르신들은 차례상 앞에 모인 가족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 올라가지 않겠나.

다선 의원인 이들의 정치역정은 격랑의 한국 정치사를 반영하듯 이합집산의 연속이었다. 이해찬의 경우 합당 창당 탈당 복당을 거치면서 7선 모두 선거벽보 정당명이 달랐다.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무소속-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시민통합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이다. 이 과정에 3번의 창당, 5번의 합당, 5번의 탈당, 2번의 복당이 점철됐다.

보수진영에서는 진보진영의 이합집산을 ‘야합’이라 했다. 사전적으로 ‘좋지 못한 목적으로 서로 어울림’이다. 여기엔 ‘야권통합’을 싸잡아 비난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 하지만 야합(野合)은 본디 가치중립적 표현이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공자의 출생과 관련해 ‘흘여안씨녀야합이생공자’(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라고 기록한다. 당시 70세인 숙량흘이 16세인 안씨 셋째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들에서 합쳤다’는 거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이런 표현이 불편했을까. 문질빈빈(文質彬彬), 즉 군자는 꾸밈과 본바탕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본바탕이 꾸밈을 누르면 야(野)라 한다(質勝文則野)’는 해설을 붙인다. 안씨녀는 숙량흘의 세 번째 부인이다. 그래서 초례청을 차리는 등 ‘꾸밈’을 생략하고 초야의 ‘본바탕’으로 결합했다는 뜻이란 거다. 과연 사마천이 그런 의미로 야합이라 했을 지는 의문이다.

공자와 관련해 해석이 분분한 용어가 또 있다. 바로 성인(聖人)이다. 사마천은 공자세가에서 노(魯)나라 대부의 말을 빌어 ‘공구는 성인의 후예다’(孔丘聖人之後)라고 적었다. 유학자들은 “대성(大聖)인 공자님이 성인의 후예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한편에선 어머니가 무당집안이라는 점에서 ‘소리를 듣는 사람’(聲人)으로 본다. 위대하다는 뜻의 성(聖)자도 원래 귀 이(耳)가 근원이다. 이를 두고 글자는 다르지만 뜻이 같은 이자동의(異字同意)라고 본다.

성인(聖人)으로 쓰든 성인(聲人)이라 하든 어쨌든 하늘의 소리를 듣는 이가 위대한 지도자의 원관념이 아니겠나. 요즘으로 말하면 천심이 민심이니 민의에 귀를 기울여야 현대 정치판의 성인, 즉 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겠다.

최근 정치권에 이합집산, 또는 합종연횡의 바람이 일고 있다. 여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통합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야권도 국민의힘과 동근(同根)인 개혁신당이 언제 어떤 형태로 합쳐질지 예측이 분분하다. 혹자는 모두다 야합이라 하지만, 여권 통합도 야합이라 하면 좀 어색하게 들린다.

어쨌든 우리 정치판의 야합은 권력만을 좇는 어울림이 아니어야 한다. 민족과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를 위해 민주정치의 꾸밈과 본바탕이 어울리는 문질빈빈(文質彬彬) ‘야합(野合)의 정치’라야 한다.

야합(野合)이든 여합(與合)이든 분열을 극복하는 통합은 민심이 우선이겠다. 소리 없는 민의에 진정 귀 기울여야 비록 성인(聲人)이나 성인(聖人)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제대로 된 성인(成人) 지도자라 하지 않겠나.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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