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킴… 뺏긴 한국 이름 제자리 찾는다

 

국회서 ‘가족관계 등록 법안’ 추진

요청따라 ‘한국식 발음’ 가능해져

“개명 필요 없어져… 반가운 소식”

이재강 의원 “성명 선택 자유 보장”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할린 동포들이 빼앗겼던 본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머나먼 러시아 땅에서도 한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식 이름을 지켜온 이들에게 정작 한국 정부는 러시아식 발음을 기준으로 생뚱맞은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경인일보 보도(2025년 12월17일자 6면 보도) 이후 국회에서 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한국 이름 지켜온 사할린 동포, 주민등록증엔 킴산우?

러시아에서도 한국 이름 지켜온 사할린 동포, 주민등록증엔 킴산우?

“러시아에서도 동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한국식 이름을 지켜왔는데….” 사할린 동포 2세대인 제재숙(75)씨는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갔던 어머니와 함께 지난 2021년 한국에 영주 귀국했다. 한국 국적을 얻고 주민등록증을 받은 그는
https://www.kyeongin.com/article/1756517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강(더불어민주당·의정부을) 의원은 11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의 이름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할 때, 외국인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대법원 관련 규칙에 의한 ‘원지음’(원래 지역에서 읽는 발음)이 아닌 한국식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게 했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릴 때는 대법원 규칙 ‘외국의 국호, 지명 및 인명의 표기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에 따라야 한다. 이 지침에 따라 외국인의 이름을 표기할 때는 본국에서 그의 이름을 발음하던 대로 표기해야 한다.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사할린2세 동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2025.11.17 /경인일보DB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사할린2세 동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2025.11.17 /경인일보DB

러시아에서 지난 2021년 영주 귀국한 제재숙(76)씨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에 돌아와 ‘채조수기’라는 엉뚱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다. 그는 러시아에서도 한국식 이름 ‘Зе Дё Суги’(로마자 Ze De Sugi)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러시아 현지인들이 그의 이름인 제재숙을 서툴게 발음하던 대로 채조수기라는 이름이 정해진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일제강점기에 당시 일본령이었던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된 이들이 러시아에서도 지켜온 한국식 이름을 고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동포들도 개정안이 시행된 지 3년 안에 법무부에 이름 변경을 신청하면 한국식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사할린 동포들은 직접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해야만 한국식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진은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사할린 동포 2세대들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2025.11.17 /경인일보DB
사진은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사할린 동포 2세대들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2025.11.17 /경인일보DB

법원의 허가를 받아 개명한 김상우(75)씨는 “내 본래 이름을 찾기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개명 신청을 했는데, 이젠 국적을 취득할 때부터 한국식 이름을 쓸 수 있다니 무척 반갑다”며 “저멀리 러시아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사할린 동포들의 설움이 풀리게 됐다”고 기뻐했다. 그가 국적을 취득했을 때 부여된 이름은 ‘킴상우’였다.

사할린 동포 2세대인 최신옥(74)씨는 “나의 성은 ‘최’인데, 국적을 받고 주민등록증을 받았더니 ‘초이신옥’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어 무척 속상했었다”며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꼭 통과되어서 나를 포함한 동포들이 제대로 된 이름을 되찾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재강 의원은 “재외동포 한 분 한 분의 이름에는 개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역사적 애환이 함께 담겨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동포들의 역사적 특수성을 존중하고, 성명 선택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