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천년 미소, 보일듯 말듯
높이 282㎝ 화강암판 ‘돋을새김
다른 입상과 달리 ‘八자형의 발’
마애불·석조불 동시에 가진 형태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 122번지 봉천산 동쪽 기슭에 가면 아주 독특한 고려시대 돌조각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화강암 판석에 부처님 전신을 얕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 높이는 282㎝이고, 판석의 두께는 어른 손으로 한 뼘 정도여서 전체적으로 얇다는 느낌을 준다. 1978년 보물 제615호로 지정됐다. 석상각 안에 모셔져 있으며, 석상각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석상각 앞 설명문에는 ‘제작 시기를 11세기경으로 추정한다’고 돼 있는데, 고려 후기 작품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여래상과 마주하면 우선 투박한 느낌의 부처님 얼굴이 다가온다. 동그란 얼굴은 약간 통통한 편이어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인중은 짧고 입술은 도톰하다. 턱은 입술 아래 편으로 U자 형 주름을 넣어 이중 턱 모양을 살려냈다. 양쪽 귀는 얼굴과 머리에 비해 유난히 크게 표현해 어깨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석상각 앞 설명문에는 ‘입가부터 양쪽 볼과 눈매에 이르기까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다’고 적어 놓았는데, 정작 입꼬리며, 눈매며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웃음기를 찾아낼 수가 없다. 혹시, 이 부처님은 보는 이에 따라 누구에게는 미소를 짓고 누구에게는 미소를 거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옷은 양쪽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두 다리까지 한꺼번에 가린 형태다. 양팔과 가슴 등에 잡힌 옷 주름도 부드럽게 처리했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손바닥은 밖으로 향해 폈다. 바로, 모든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 준다는 의미의 여원인(與願印)이다. 왼손은 왼편 가슴쪽으로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 형상을 취했는데,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댄 형태다.
몸 뒤쪽의 광배(光背)는 뚜렷하다. 얼굴 뒤의 두광(頭光)과 몸체를 부각하는 신광(身光)이 확실히 구분된다. 상반신 광배의 가장자리는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 모양의 화염문(火炎文)이 표현돼 있다. 여래상을 앞에서 보았을 때 왼쪽 위 화염문 부분과 오른쪽 중간 끄트머리 약간이 떨어져 나갔다.
이 여래상의 특이점은 두 발의 모양에 있다. 보통의 경우 서 있는 불상의 모습은 발을 11자 형으로 나란히 한 형태다. 그런데, 이 여래상은 발뒤꿈치를 바짝 붙이고 발가락쪽 앞꿈치를 넓은 팔(八)자 형으로 벌려 놓았다.
또 한 가지, 바위의 측면을 깎아 새긴 마애불의 모습과 석조불상의 형태를 동시에 띠고 있다는 점도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여래상을 이쪽저쪽 살피다 보면, 저렇게 큰 돌을 어쩌면 저리도 얇게 떼어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걸 또 저렇게 똑바로 세워 놓은 공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석조여래입상은 누가 세웠을까. 석상각 바로 뒤편에는 이곳을 본관으로 삼는 하음 봉씨의 시조가 되는 봉우(奉佑)의 묘소가 있다. 석상각에는 하음봉씨종친회에서 이 여래상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왕명으로 만든 봉우의 형상이라는 취지의 석상각전기(石像閣傳記) 현판도 달아 놓았다. 석상각전기에 적힌 대로 이 여래상이 봉우의 형상을 새겼다고 믿기지는 않지만 고려시대 하음 봉씨 집안과 관련이 깊다고는 볼 수 있다.
강화군 장정리 석조여래입상은 불상의 기본 자태라고 할 수 있는 자비롭고 편안한 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백제시기의 상징적 불상으로 ‘백제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처럼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면 이 여래상 역시 당연히 ‘고려의 미소’나 ‘강화의 미소’라 불려야 할 터이지만 아쉽게도 그 웃음이 뚜렷하지 않다. 그럼에도 장정리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기 사람들의 얼굴을 형상화한 ‘강화의 얼굴’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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