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동포는 일제강점기와 냉전 시대에 희생된 이산민(離散民)이다. 1930~1940년대 일제에 강제 동원돼 머나먼 타국의 탄광과 벌목장에서 가혹한 노역에 시달렸다. 1945년 조국은 해방됐지만 사할린 동포는 철저히 방치된 채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다. 고국에 돌아갈 날만을 손꼽으며 무국적자로 차별과 설움을 감내했다. 끝내 귀향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타국의 차가운 땅에 묻힌 동포들의 한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할린 동포 1세대는 ‘타국에 살아도 모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1945년 12월 조선학교를 세워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하지만 1964년 조선학교와 조선문화학교가 폐쇄되면서 한글 교육의 명맥이 끊기는 듯했다. 전환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이듬해부터 한국 열풍이 일어났다. 한국어 학원이 문을 열고 사할린 국립대학교에 한국어학과도 개설됐다. 사할린 동포에게 한글과 한국어는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이다.
채조수기(제재숙)와 이나꼬사리(이녹생). 천신만고 끝에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의 이름이다. 한국 정부는 주민등록증에 생뚱맞고 어색한 이름을 새겨 넣었다. 2021년 어머니와 함께 영구 귀국한 동포 2세대인 제재숙(75)씨는 한국 국적을 얻었다는 감격도 잠시, 자신의 낯선 이름 표기에 적잖이 당황했단다. 러시아에서도 어렵사리 지켜온 한글 이름 ‘제재숙’이 아닌 ‘Зе Дё Суги’(로마자 Ze De Sugi)라는 러시아식 발음을 따라 표기된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정한 ‘외국인명표기지침’상 가족관계등록부나 외국인등록표에 한글 성명이 미등록된 외국인은 로마자 성명을 기준으로 ‘원지음’(원래 지역에서 읽는 발음)에 따라 표기해야 한다. 성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정의 횡포이고 모욕이다. 한평생 간절히 바라던 고국에 돌아왔건만 또 다른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셈이다.
늦었지만 빼앗긴 한글 이름을 되찾을 희망이 생겼다. 국회에서 ‘원지음’이 아닌 ‘한국식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11일 발의됐다. 사할린 동포 한 명 한 명의 이름은 피와 눈물이 배어 있는 정체성이자 자부심이다. 고국 품에 안겨서도 외국식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고국이 한 핏줄인 동포를 가슴으로 품지 못했다는 증거일 테다. 동포의 한국 이름을 찾아주는 일, 조국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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