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

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지만,

‘따뜻한 겨울’ 꿈 짓밟힌 사람은

추운 거리 찬바닥에서 농성한다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매해 겨울, 집 수도가 얼고 있다. 벌써 3년째 수도를 얼리고 있으니 무능한 관리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파에 매번 수도를 동결 당하는 것이 억울하지만 당하는 데에도 나름 이유는 있다. 사실 수도가 어는 것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수도관이 지나가는 곳에 보온재를 충분히 넣어 냉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당연히 파이프는 보온재를 싸매어 케이블 타이로 꼼꼼히 묶었고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 낡은 이불솜과 이제는 입지 않는 헌 패딩, 그리고 잊고 싶은 추억이 매달려 있어서 버리려다가 처박아 둔 후드 티셔츠 등으로 그 위를 감싸두었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워하며 마음을 놓았다가 결국 수도가 얼어서 보일러까지 멈춰버렸던 것이 지난해였다. 보일러실이 집 밖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며칠을 계속되는 한파의 공격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물을 틀어놔야 한다. 물만 잘 틀어놓으면 수도가 얼 일이 없고 수도가 얼지 않으면 보일러는 돌아간다.

이렇게 간단한 일임에도 수도를 얼리게 되는 이유는 궁상스럽게도 수도세 때문이다. 종일 물방울이 떨어지도록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놓고 출근해야 하고 잠자리에 들 때도 물을 틀어놓아야 한다. 그러면 그렇게 떨어지며 흘러가버리는 물방울들이 마치 100원짜리 동전이 떨어지듯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이다. 수도가 얼지 않을 최소한의 물을 흘리고 싶어서 아주 천천히, 마치 아...다...지...오...(매우 느리게)로 좌우를 천천히 오가는 메트로놈의 간격으로 물이 떨어지게 조절을 했다가 수도가 얼었던 지난 과오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안..단..테..(조금 느리게)로 떨어지게 똑똑똑똑 조절을 해두었다.

하지만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4일을 넘게 계속되자 안단테도 소용이 없었다. 수도가 얼고도 보일러는 이틀을 더 생존했지만 결국 물 부족 에러가 뜨고 말았다. 배관 파이프에 차 있는 물로 보일러를 돌리다가 결국 계속 수도가 공급되지 않으니 작동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에는 큰 맘 먹고 구입한 온수매트가 준비되어 있다. 방바닥은 냉기로 얼음장 같지만 온수매트를 최고 온도로 높이고 이불을 두 겹으로 두르고 자면 코끝 찡하게나마 겨울밤을 넘길 수 있다.

이럴 때면 문득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이면 늘 떠오르는 시, 바로 장정일의 ‘석유를 사러’이다. 시 속의 화자는 수중에 한 장 남은 지폐로 아침에 쌀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 밤에 난로에 넣을 석유를 사러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난관을 모면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시도한다는 것/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내일 굶주린다 해도,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장정일 ‘석유를 사러’中)

시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그렇지.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이 시 쓰는 일보다 중요하지, 하며 온수매트 이불 속으로 들어가 언 발을 녹인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에 잠긴다.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 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지만,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하며 정당하게 노동하고 정당하게 돈을 벌어 가족들과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자 하는 꿈이 짓밟힌 사람들은 추운 거리에서 찬 바닥에 앉아 농성을 한다. 기꺼이 따뜻해지기를 포기하고 찬 거리로 나온다.

지난 여름, 불구덩이 같은 콘크리트 건물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600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들과 도로 위 철제 구조물 위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336일 고공농성을 했던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겨울은 아직 녹지 않았다. 합법이라는 알량한 판자 뒤에 숨어 자신들의 노조 혐오를 감춰보려는 자본가들의 비겁한 속내가 노동자들의 노동할 권리를 빼앗고 노조할 권리도 빼앗고 여름에는 불판 같은 열기 속으로 겨울에는 칼날 같은 한기 속으로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다. 꿈조차 빼앗고 봄마저 빼앗으려고 한다.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