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닷새간의 설 연휴가 이어진다. 따분한 귀성·귀경길을 조금이나마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언제 어디서나 가벼운 마음으로 꺼내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을 챙긴다면 꽉 막힌 이동길이 조금은 즐거워질 것이다. 지난해 서점가를 휩쓴 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 세 편을 추렸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사람 사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 포착, 긴장감 있게 묘사
우리는 모두 가슴 속에 좀처럼 열지 않는 문을 여러 개 지니고 살아간다. 사회에는 각자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강보라 작가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분투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조금은 특별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각자의 영역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 그리고 서로의 눈에 조금씩은 이상해보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조명한 것이다. 이 소설집은 7편의 단편 소설을 엮어냈다.
작가의 문필력 덕분일까. 전개는 흡입력있게 흘러간다. 강 작가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피사체가 돼 살아가는 인간 내면에서 생동하는 감정을 포착해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리운 그늘과 낯섦이 불러오는 긴장 관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이 소설집을 여러번 꺼내 읽게 하는 이유다.
혼모노
나이 든 박수무당의 고군분투기… 표제작 등 7편 수록
‘혼모노’는 지난해 이른바 ‘성해나 돌풍’을 일으킨 책이다. 신예 작가가 쓴 이 소설집은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며 장기 흥행을 이끌었다. 배우 박정민은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총 7편이 담겼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무속을 주제로 한 ‘혼모노’다. 나이 든 박수무당은 어린 신애기의 등장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펼쳐나가는 서사 속에서 독자들은 이들을 규정하는 사회적인 잣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과 마찬가지로, 지역과 정치, 세대를 비롯해 서로를 가르는 다양한 경계를 들여다보는 소설집이다. 세태의 풍경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스무드’ 등도 함께 수록됐다.
크리미널 러브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 등 다소 충격적… 낯선 사랑 서사
이희주 작가가 그리는 ‘사랑’은 다소 낯선 모습을 하고 있다. 기괴하다고 해야할까.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서로를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사랑, 이런 사회가 규정한 ‘일반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또 어떤 폭력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질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크리미널 러브’는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최애의 아이’를 포함한 작품 8편이 수록됐다.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최애의 아이’는 이 작가가 그린 ‘사랑의 세계’를 선명히 보여준다. 최애 아이돌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임신한 여성.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 아릿한 관계 설정과 등장 인물의 절절한 사랑을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해 더해진 약간의 환상성은 흡인력을 더한다.
한번 읽으면 뇌리에 박힐 정도로, 다소 충격적인 서사이지만 가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 사이를 오가는 그의 소설은 기묘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나아가 ‘작가가 담아낸 순수한 욕망이 어쩌면 아름다운 사랑의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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