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먹거리 즐비한 수진동 학원가
“4명 가서 떡볶이 하나에 볶음밥 5개”
양배추 사리 이색적, 매운맛 잡아줘
‘그때의 나’ 그리워 다시 찾는 떡볶이
우리가 주로 먹는 떡볶이의 종류를 나누자면, 커다란 철판에 떡볶이를 한가득 넣고 끓이는 ‘판떡볶이’와 전골 냄비에 각종 재료를 넣고 끓여 먹는 ‘즉석떡볶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석떡볶이는 줄여 ‘즉떡’이라고 불렀는데, 즉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신당동입니다. 실제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 즉떡은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위치한 마복림 떡볶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3년 처음 마복림 떡볶이가 문을 열었고 1970년대 다른 즉떡 가게들이 문을 열면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생긴 것이죠.
즉떡의 매력은 내가 원하는대로 재료를 넣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라면 사리를 추가할 수도 있고 떡볶이가 더 먹고 싶다면 떡을, 어묵을 더 먹고 싶다면 어묵을 더 넣어 먹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즉떡이 인기였던 이유는, 가격 대비 양이 푸짐하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럿이 둘러 앉아 원하는 사리를 넣어 떡볶이를 먹고 그 후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볶음밥까지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컵떡볶이를 먹었다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둘러 앉아 즉떡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번 레트로K는 학교 앞 분식집에 이어, 중고등학생들의 방과후 소울푸드였던 추억의 즉떡을 찾아갑니다.
성남 ‘떡볶이 닷컴’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는 지역마다 유명한 ‘학원가’가 있습니다. 학원들이 몰려 있는 곳을 말하는데, 주로 그 동네 이름을 붙여 대치동 학원가, 평촌 학원가처럼 ‘OO학원가’로 불립니다. 한국 교육 구조가 결국엔 대학 입시로 향하는 만큼 그때도 지금도 상당수 학생이 학원가로 몰려 있을 수 밖에 없죠. 웃픈 현상이지만, 학교가 끝난 후 밤까지 이어지는 학원수업에 학원가 주변에는 항상 학생을 겨냥한 먹거리들이 넘쳐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컵밥과 같은 간편식부터 떡볶이와 같은 분식류가 특히 많습니다.
성남 떡볶이닷컴은 지하철 8호선 수진역에서 하대원동 방향의 오르막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떡볶이닷컴은 학교 앞 떡볶이집인 동시에, 학원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변에는 성남 중앙초등학교, 성일고등학교를 비롯해 초중고교 8곳이 있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2000년대 당시엔 성남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학원들이 밀집했던 곳이었죠.
그시절 풍생고등학교를 다녔던 이상호(36·가명)씨도 학교가 끝나면 이 학원가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같은 학원을 다녔던 성일고등학교 친구와 떡볶이닷컴에서 종종 저녁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가격도 저렴했고 즉석떡볶이를 다 먹은 후 볶음밥까지 비벼 먹고나면 배가 든든했기 때문이죠.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상호씨는 떡볶이닷컴 단골이었습니다. 성남 종합운동장에 있는 공설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고나면, 고픈 배를 이끌고 이곳까지 걸어와 푸짐하게 떡볶이를 먹었다고 추억합니다.
“가격이 싸고 볶음밥도 먹을 수 있었는데 배고플때 그만한게 없었어요. 친구들 3~4명이서 가면 떡볶이를 작은거 시키고 볶음밥은 5개씩 시켜 먹곤 했어요. 삶은달걀은 볶음밥에 비벼 먹어야 해서 친구들끼리 떡볶이 먹을 때는 건들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었죠”
상호씨는 나중에 대학교에 진학하고도 가끔 떡볶이닷컴을 찾았습니다. 그시절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 맛이 그리웠기 때문이죠. 떡볶이닷컴 최종단 사장님도 요새 학생들보다는 상호씨처럼 학창시절에 다니다 성인이 된 후에 가족들과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원래 30년정도 떡볶이집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여기와서 벌써 29년째 하고 있어요. 요새 친구들은 떡볶이말고도 먹을 게 많아서 그런지 잘 안 오고, 옛날에 다녔다는 친구들이 아기나 가족들 데리고 와요”
2000년대 당시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야간 자율학습(야자)을 하는 학교가 많았는데, 야자 시작 전 저녁을 먹는 석식시간에 인근 학교 학생들이 뛰어와 후다닥 먹고 가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시절에만 있었던 추억 중 하나죠.
떡볶이닷컴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학교 앞에서 철판에 떡볶이를 풀어서 파는 ‘판떡’이 아닌, ‘즉석떡볶이’를 팝니다. 즉석떡볶이 1인분은 4천500원, 매운맛과 중간맛, 기본맛을 고를 수 있습니다. 사리는 라면, 쫄면, 오뎅, 양배추, 치즈, 김말이 등 다양해 내가 원하는 대로 추가해 먹을 수 있습니다.
즉석떡볶이 2인분에 라면, 양배추, 달걀, 김말이, 야끼만두를 추가하니 밑이 깊은 검정색 전골냄비에 아직 조리되지 않은 떡볶이가 빨간 국물에 담겨 나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는 양배추 사리를 추가할 수 있는데 양배추에서 나오는 단맛이 기존 떡볶이 국물의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빨갛기보다는 하얀색에 가까운 무김치가 하나뿐인 반찬인데, 매콤하고 칼칼한 떡볶이와 함께 먹으면 매운맛을 잡아줘 환상의 궁합이었습니다.
떡볶이를 어느정도 먹고난 뒤, 볶음밥을 추가했더니 사장님은 남은 떡볶이를 그릇 하나에 옮겨담고는 냄비를 가지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다시 돌아온 냄비 안에는 밥과 김가루, 참기름이 전부. 불을 켜서 밥을 볶기 시작하자 냄비에 남아 있던 떡볶이 양념이 냄비에 달라붙으며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왔습니다.
이 집의 떡볶이는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볶음밥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김과 참기름이 전부였지만, 그 속에는 상호씨를 비롯해 학창시절 이곳을 찾았던 학생들의 추억의 맛이 가득했습니다. 마라맛 떡볶이, 로제맛 떡볶이처럼 매번 새로운 떡볶이 메뉴가 출시되지만, 그 한 편에는 학교 앞에서,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둘러 앉아 먹었던 ‘그 떡볶이’를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떡볶이닷컴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그때의 나, 그때의 친구들, 그때의 추억이 그립기 때문 아닐까요.
그동안 레트로K: 노스탤지어의 공간과 추억여행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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