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은 이념 스승, 이해찬 정치적 제자
전환기 한국 사회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진보·보수 반듯해야 다음 변혁 가능해져
한 달 전,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베트남에서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현지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즉각 정무 특보를 베트남으로 보냈다. 현지 상황을 파악해서 청와대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경우 보통은 외교부가 담당한다. 대통령이 특보를 급파한 건 역대 정부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다. 단순히 이해찬 전 총리가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여서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진보 진영은 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그 자리를 이어 나갔지만, 이들이 곧 진영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정신적 지주 또는 사상적 좌장은 따로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서 살을 베는 개혁을 통해 당시 청소년 세대와 진보적 가치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던 사람, 이후의 민주당 정부에서 실세 총리와 ‘킹메이커’로서 진영의 흐트러짐을 막고 단일 대오를 유지케 했던 사람, 진영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전술을 구사한 거의 유일한 사람, 바로 이해찬이다.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영의 한쪽에서 나왔던 배경이다.
이해찬은 지금의 40대 초·중반 세대를 민주당 정부의 가장 강력한 우군으로 길러냈다. 교육 수장인 그의 의지가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그때의 10대들, 이른바 ‘이해찬 세대’는 진보적 이념과 가치로 호흡하게 된 첫 세대다. 그들이 저렇게 자라나 진보 진영의 철벽 방패가 됐다. 2018년 11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당시 당원토론회에서 진보의 ‘20년+α’ 집권을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적 토대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이해찬도 겸손하게 한 걸음 물러나게 하는 이가 있다. 진보 진영의 사상적 좌장 백낙청 교수다. 1966년 계간 ‘창작과 비평’의 창간 편집인으로 참여하면서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과 같은 거대 담론 형성을 주도했다. 특히 그의 ‘분단체제론’은 한국 사회의 모든 정치·사회적 문제를 분단체제라는 구조적 틀에서 이해함으로써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해찬이 핵심 지도자로 활동했던 ‘민청련’도, 정치적 전략가로 참여한 ‘민통련’도 어김없이 분단체제론이 사상적 기반이 됐다.
담론을 만들고, 주도하는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지난해 7월엔 신간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를 냈다. 분단체제와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전환을 강조하면서 보수·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변혁적 중도’ 개념을 제시했다. 기존 체제의 한계와 기득권 구조를 넘어서는 실천적 전략으로서 지금 이재명 정부의 노선, 실용과 통합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진보 진영의 두 ‘구루’(Guru)는 한국의 진보적 사상과 민주화운동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연결된다. 백낙청은 이념적 스승, 이해찬은 정치적 제자로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연대를 상징한다. 백낙청의 사상적 작업이 없었다면 민주화운동은 방향성을 잃었을 것이고, 이해찬의 실천적 정치가 없었다면 이론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는 대체로 옳다. 독재와 수구로 암울했던 시대를 겪어야 했던 진보 진영의 관점에선 산스크리트어 어원 그대로 ‘어둠(gu)을 없애는(ru)’ 사람들이다.
한 명이 떠났다. 남은 이도 떠날 것이다. 이제 누가 진보 진영의 정신적·사상적 구심점 역할을 해낼 것인가. 단순히 한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의 향후 전개와 밀접한 사안이다. 보수가 저리도 지리멸렬 곤궁한 처지에 놓인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궤멸 상태의 보수를 살리려면 진보의 운동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 진보의 역동적 에너지가 보수 회생의 호흡줄이 될 수 있다.
새는 좌우 두 개의 날개로 날고, 수레 역시 좌우 두 바퀴로 굴러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고, 순리다. 한국 사회 또한 어느 한쪽의 날개와 바퀴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전환기의 한국 사회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진보와 보수가 반듯하게 서야 한다. 그런 토대가 먼저 회복되어야 다음 단계의 변혁도 가능해진다. 이 엄청난 일을 해낼 진보의 새로운 ‘구루’는 누구인가.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