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마약왕,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자산은 최대 300억 달러로 추정됐는데 당시 국가 부채와 맞먹는 규모였다. 남미 마약 카르텔들은 막대한 자본과 중무장 병력으로 도시를 장악해 카르텔을 수호한다. 소탕하려면 국가가 비정규전을 각오해야 할 정도다. 콜롬비아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서야 1993년 에스코바르를 사살했다. 멕시코는 최근 특전사 500명과 헬기 22대를 투입해 마약 카르텔 두목 네메시오 오세게라를 사살했지만, 카르텔 잔당들의 게릴라식 반격에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한국은 남미처럼 마약 카르텔이 대놓고 활동할 수 없는 나라다. 눈뜨고 당할 공권력과 시민의식이 아니거니와 총기무장은 꿈도 못꾼다. 그래도 마약 문제는 심각해졌다. 2015년 인구 마약청정국(10만 명당 연간 마약사범 20명) 지위를 상실한 이후 마약 범죄 지수는 악화일로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사범이 2020년 1만8천50명에서 2024년 2만3천22명으로 증가했다. 관세청이 2025년 7월까지 적발한 마약류 2천736㎏은 전년 동기 대비 3배에 달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를 발족한 배경이다. 지금이 마약청정국으로 복귀할 마지막 기회라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통계 밖의 범죄 규모를 전혀 가늠할 수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실제 마약사범, 마약유통 규모를 적발 수치의 10~30배로 추정한다. 장막에 가려진 실제 마약범죄 현장의 양상은 훨씬 끔찍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가 25일 7급 공무원을 ‘마약 드라퍼(dropper)’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수도권 한 시청에서 도로 청소차 관리를 하면서 입수한 CCTV 위치정보를 악용해 상선에게 전달받은 마약을 배달하고 1천200만원을 암호화폐로 받았다. 현직 공무원까지 마약 배달을 시킬 정도로 정교하고 거대해진 지하 마약 카르텔의 존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마약조직들이 운반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퇴직금까지 적립한다는 뉴스가 수년 전의 일이다. 자금력으로 조직을 보호할 비선 네트워크를 각계각층에 깔아놓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용불량자 100만명, 장기실업 청년, 빈곤층 노인 등 암시장을 확장할 인력은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마약 전쟁도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지하의 카르텔을 정조준해야 할 지경이지 싶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