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바퀴에 몸을 실은 곡예사가 아슬아슬 공중 줄타기를 한다. 발끝으로 항아리를 돌리고, 머리로 물구나무선 채 손발로 원반을 감아챈다. 시뻘건 불꽃 링을 통과하는 고난도 묘기부터 코끼리와 원숭이 쇼까지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공중그네쇼다. 천장 아래 매달린 그네가 흔들리고,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른다. 그네에서 손을 놓는 순간 객석은 숨을 죽이고, 곡예사끼리 손을 맞잡으니 안도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TV도 귀하던 1960~1970년대 동춘서커스는 인기 절정이었다. 공터에 천막이 세워지면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였다. 천막 안은 꿈과 환상이 뒤섞인 동경의 세계였다.
동춘서커스는 1925년 동춘 박동수 선생이 창단한 한국 최초의 연극 서커스단이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 서민들에게 웃음과 해학을 선사한 해방구였다. 연극, 국악, 서커스, 마술, 풍물 등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가는 근대 유랑공연의 원형이다. 한창 명성을 떨칠 때는 단원 수가 250명을 넘었단다. 배삼룡, 서영춘, 백금녀, 이주일, 남철, 남성남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동춘서커스는 1980년대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미디어의 발달과 동물 공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레퍼토리도 점차 축소됐다. 2009년 해체가 결정된 적도 있지만 여론의 힘으로 기사회생했다. 정통 장르의 뿌리는 지키면서 창작 프로그램을 접목해 ‘테마가 있는 서커스’로 변신했다. 2011년 6월에는 안산 대부도에 상설 공연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관람객 감소와 운영비 부담에 재정난은 갈수록 악화됐다. 설상가상 오는 10월이면 부지 사용 계약마저 만료된다. 아직 대체 부지를 구하지 못한 채 노심초사다. 공연 수입만으로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원의 손길이 간절하다.
국내 최초 유일의 동춘서커스는 한세기 동안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한국 공연사의 살아있는 증거다. 아트 서커스의 대명사인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보다도 60년 긴 역사를 품고 있다. 그 긴 세월 속에는 AI시대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온기와 향수가 스며 있다. 몸으로 터득해 전승한 무형의 유산이다. 동춘서커스를 K컬처의 당당한 한 장르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넘친다. 하지만 지금 동춘서커스단이 처한 현실은 ‘생사륜’ 위에 위태롭게 올라탄 곡예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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