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달래며 비행기 12시간
나만 그러며 온줄 알았지만
봉와직염에 휠체어 탄 남자
“이런 일 꿈에도 생각 못해”
공항이 북새통이라는 명절 즈음에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을 6일 남겨놓고 일이 벌어졌다.
낮에도 영하권이었던 그날 따라 사무실이 유난히 추웠다. 밤늦게 작업을 끝내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한기가 확 덮쳤다. 너무 추워 진저리가 쳐졌다. 걸어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막 뛰었다. 혈액순환이 되면 나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섰다가 다시 뛰고를 반복했다. 좀 참을 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 집에 도착했다. 그래서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몸살이 들어온 것이다. 요즘은 감기에 걸리면 적어도 보름, 한 달은 앓아야 하니까 큰일 났다 싶었다. 제일 먼저 ‘여행’이 걱정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몸에서 땀을 빼는 게 급선무였다. 한증막으로 달려갔다. 참나무 장작이 이글거리는 사우나실을 들락거리며 많은 땀을 흘렸다. 그러나 몸살은 완강했고, 내가 음식물을 삼키는 것조차 방해했다. 여전히 몸에 한기는 남아 있었다. 역시 더운 방에서 땀을 빼내는 게 답이다 싶어서 이틀간 방바닥을 절절 끓게 하고 땀을 비 오듯 흘렸다. 그 결과 몸살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다음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 통증이 배턴을 이어받은 것이다. 지난해부터 양쪽 어깨에 번갈아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침을 맞으면서 한의사한테 원인을 물으면 “늙느라고 그래요”라는 답변이 돌아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여행은 가고 싶었다. 급하니까 양의를 찾게 되었다. 통증의학과에서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도 찍었다. 의사는 “여기 석회가 낀 것 보이죠? 양쪽에 다 있는데 오른쪽이 훨씬 크네요”하며 주사를 놔줬다. 도수치료를 받으라 권유해 그 다음날까지 받았다. 도수치료사는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살살 주물렀다. 그런데 두번째날 오후부터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눕자 뒤척일 수도 없었고 일어날 때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 내일 출발해야 하는데…’. 결국 밤 11시에 여행사 길잡이한테 못 간다는 문자를 보냈다. 길잡이는 내가 취소해도 돌려받을 돈이 별로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전혀 괜찮지 않았다. 밤새 뒤척였다. 지난해 11월 개관했다는 이집트 대박물관을 보겠다고 나서는 길이었는데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분명 ‘파라오의 저주’(?)였다.
천만다행 아침에 일어나는데 전날보다 허리가 덜 아팠다. ‘이 상태에서 침을 맞는다면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몰라’. 나는 살살 걸어서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는 “그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닌데 가야죠. 별일 없을 거예요”하며 나를 달랬다. 또 복대를 하고 가라, 비행기에서 등받이를 해라,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허리를 움직이라고 당부했다.
복대를 하는 순간 허리가 고정되는 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12시간 동안 나는 나대로 애를 썼다. 앞으로 옆으로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허리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허리가 마침내 보답을 해줬다. 걷는 게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시간이 더 가자 캐리어를 드는 것도 가능했다.
나만 이런 푸닥거리를 하고 온 줄 알았다. 그러나 우연히 한 여자 여행객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도 갑자기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20만원을 쓰면서 주사를 맞고 왔노라고, 거듭 20만원을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여행 3일째 되던 날 내 또래의 남자 여행객은 갑자기 발등이 부어올라 엠뷸런스에 실려갔는데 세균에 감염되어 나타나는 봉와직염이라고 했단다. 연고 바르고 반창고 하나 붙여주면서 우리돈으로 65만원을 받더라고 허탈해했다. 그는 우리가 여기저기 구경할 때 호텔방에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항생제를 먹어 좀 낫는가 싶어 다시 구경길에 나섰다가 도루묵이 되었다. 다리는 검붉게 부풀어오르고 통증이 심해져 결국 휠체어를 타고 귀국했다. 그는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꿈에나 생각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닌 고수들이 즐비한 그 여행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기타 등등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예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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