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연(국민의힘·용인6) 경기도의원
지미연(국민의힘·용인6) 경기도의원

매해 3·1절이 돌아올 때마다 필자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107년 전 그날, 총칼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많은 이름들을 생각한다. 그 이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대한민국이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가히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영국 브랜드 평가기관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한 ‘2026 글로벌 소프트파워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93개국 중 1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골든글로브 2관왕을 차지했다. 세계 모두가 인정한 대한민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뛰어난 역량과 시민의식 덕분이며, 5천 년 긴 역사 속에서 이름도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대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분들의 헌신에 보답하고자 국가는 보훈을 법제화하고 국가의 책무로 삼고 있다. 국가보훈기본법 제1조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문장은 국가의 책무를 말하고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

3·1절을 맞이한 오늘,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과연 그 보훈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경기도에 사는 월남전 참전유공자가 매달 받는 광역 참전명예수당은 월 6만6천600원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서울특별시에 거주한다면 최대 20만원을 받고, 제주도였다면 최대 28만원이다. 같은 대한민국을 위해, 같은 전장에서 싸운 사람이 사는 지역에 따라 최대 네 배의 차이를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전국 17개 광역시도의 참전수당이 제각각인 현실은 보훈이 국가 책임이 아닌 지역의 선심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국가가 말하는 ‘영예로운 삶’인가. 헌신의 무게는 같은데 보상의 무게는 주소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데 있다. 자치단체가 보훈에 온기를 더하려는 노력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의 기본이 지자체 재정 형편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국가가 법으로 정한 책무를 지방의 곳간 사정에 맡기는 것은 책임의 회피다. 나라를 위한 헌신은 대한민국 전체에 대한 것이지, 특정 시·군에 대한 것이 아니다.

국가 예산에서 보훈이 차지하는 비중도 되짚어봐야 한다. 2022년 기준 미국은 국가 전체 예산의 4.6%를 지출하지만, 대한민국은 고작 1%에 머물고 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라는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국가에 대한 헌신의 상실로 나타나고 있다. World Values Survey 제7차 조사(2017~2022)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나라에 대한 자긍심’은 64개국 중 48위였다. ‘전쟁이 나도 참전하지 않겠다’는 응답 비율은 32.6%로, 1984년 1차 조사의 6.5%에서 38년 만에 되려 다섯 배로 늘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도 국가가 제대로 보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쌓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수치는 냉정하게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헌신에 보답하는 나라인가.

이에 필자는 보훈 지원의 최저 기준을 국가가 직접 정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어느 지역에 살든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이 동등한 기본 예우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형편으로 보훈의 품격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보훈 예산을 선진국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국가를 위한 헌신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예산으로 증명해야 한다.

3·1절은 희생을 기억하는 날인 동시에, 그 희생에 우리가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필자는 경기도의회 의원으로서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 이제는 말이 아닌 제도로 만들기 위해 관련 조례의 정비와 건의안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희생에 보답하겠다.

/지미연(국민의힘·용인6)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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