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인천 해마다 ‘타자’ 증가

조선족·고려인 외국국적동포도

정부·자치단체, 대화·소통했나

자아는 여전히 그들 타인으로 봐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

유대인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인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자아(自我)와 타자(他者)에 대한 정의와 의미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나치에 의해서 두 동생이 죽음을 당한 후 이 주제를 철학적으로 심도 깊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나치는 당연히 세상에서 공존할 수 없는 타자이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이러한 나치와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철학적으로 연구하였다. 일반적으로 타자는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자아도 타자에게 타자가 되며, 자아 안에도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타자는 소통이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해가 필요한 존재라고 하였다. 그는 자아의 존재는 타자 없이는 불가능하며, 타자의 죽음은 곧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자아가 타자와 세상에서 공존해야만 하는 이유는 타자가 자아에게 깨달음을 제공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자아와 타자에 대한 철학적 사고는 인류에게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들이 왜 발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역사는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타자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소통이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타자를 이해하고 타자로부터 깨우침을 받아서 자아가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는 이해의 대상이지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경우에는 자아와 타자가 평화롭게 세상에서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폭력으로 타자가 나의 관점을 따르도록 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자아인 유대인이 타자인 독일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만든 유대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독일인을 깨달음을 제공하는 타자가 아니라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모르는 존재인 타인으로만 생각했다.

나치에 의해서 두 동생이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지만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나치의 비인간적인 폭력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를 오히려 유대인에게 돌렸다. 유대인에게 행한 독일인의 야만적인 폭력이 일어나기 전에 유대인이 먼저 타자인 독일인을 이해했다면 깨달음을 얻고 자아를 변화시켜서 이러한 비극을 방지했을 것이라는 것이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적 주장이었다. 선뜻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이해하기 힘들다. 모든 인간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자아와 타자의 공존 방식을 이해한다면 모든 인간은 예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타자를 자아에게 맞추려고 폭력을 동원했던 비극적인 역사만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 대중매체가 발전하고 SNS가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21세기에 소통이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타자는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타자를 이해하기 보다는 타자에게 자아를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더 많아지고 있으며, 타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폭력도 난무하고 있다.

경기도와 인천에는 매년 타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소통하기 힘든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외국인들이 새로운 타자들이다. 그 중에는 조선족과 고려인 같은 외국국적동포들도 있다. 자아인 한국인이 타자인 외국국적동포를 지금까지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자아인 한국 정부, 경기도와 인천의 지방자치단체는 타자들을 지금까지 어떤 정책으로 대하고 있었는가? 타자인 그들과 얼마나 대화하고 소통했는가? 자아의 시선과 관점만으로 만든 법과 제도를 가지고 타자들을 변화시키려고 한 적은 없었는가? 타자들은 한국에서 경기도에서 인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아를 이해하려고 소통하려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데 자아는 여전히 그들을 타자가 아닌 타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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