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임시·잠정조치 자동 연장
‘최장 3년 보호명령’ 활용도 떨어져
전·현 배우자나 연인 등에 의한 ‘관계성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현행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동탄 납치 살인’이나 ‘부평 가정폭력 살인’ 사건 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국회입법조사처(김혜미 입법조사관)는 최근 ‘관계성 범죄 피해자 보호조치의 한계 및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관계성 범죄로 인한 중대 피해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현행 피해자 보호조치 운영 양상을 점검하고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발생한 동탄 납치 살인, 대구 스토킹 살인, 부평 가정폭력 살인 사건은 가해자가 폭행, 스토킹, 협박 등을 저질러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던 도중에 피해자를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평 가정폭력 살인 피해자는 흉기를 든 남편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주거지 퇴거, 접근·연락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는 ‘임시조치’를 법원에 추가로 신청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앞서 임시조치가 시행된 6개월 동안에는 남편의 접근을 막을 수 있었던 아내는 이 조치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집에 찾아온 남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됐다. 이는 임시조치가 시행 기간에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가해자의 재범을 막을 수 없다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보여줬다.(2025년 7월14·15일자 1·10·14면 보도)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사건을 예시로 들며 “보호조치가 시행되는 일정 기간에는 가해자의 접근과 재범을 막을 수 있지만, 가해자의 행위를 살펴보는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동탄 납치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심지어 법원으로부터 임시조치를 명령받은 후에도 피해자의 거처를 알아내 그를 납치 살해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임시조치’,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잠정조치’를 명령하는 법원이 감독기관으로서 가해자의 재범 위험성 수준을 지속적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시조치와 잠정조치의 기간이 짧다는 점도 지적했다. 임시조치는 최장 6개월, 잠정조치는 최장 9개월 시행된다. 피해자 보호조치의 기간을 명시한 한국과 달리 독일, 영국과 미국 등 해외 국가들은 연장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미국은 가해자가 보호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법원이 조치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자동으로 조치를 연장하기도 한다.
임시조치가 끝난 뒤에도 최장 3년간 가해자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피해자 보호명령’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법원에 신청한 피해자 보호명령 접수 건수는 2020년에는 2천783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천588건으로 그 수가 줄었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으로부터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에 대해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해 제도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부평 가정폭력 살인 피해자는 남편의 임시조치가 끝난 뒤 불안감에 떨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에 대해 제때 안내받지 못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특히 “피해자 보호명령을 시행해야 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긴급한 경우에는 빠르게 피해자 보호명령을 발령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명령은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신청할 수 있는 보호제도인 만큼 이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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