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와 中 루쉰예술대학 찾아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강의실에 처박혔을 청년들 떠올라
내 스무살도 얼마나 비장했던가
나는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우리 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예술대학 건물 1층이었으나 북쪽을 향해 난 건물이라 늘 복도며 강의실이 어둑신했다. 전공 수업은 대개 작품 합평으로 이루어져서 선배들이며 동기들은 합평 날짜에 맞추어 작품을 쓰느라 늘 꾀죄죄한 꼴이었다.
문예창작학과 옆으로 영화과와 연극과, 그리고 서양화과와 한국화과가 있었다. 똑같은 예술대라지만 그들은 참말 달랐다. 물감 범벅이 된 앞치마를 두르고, 손톱엔 덕지덕지 물감 때가 앉았으나 그들은 언제나 해사하고 낭만적이었다. 고질고질한 문창과 남학생들이 감히 들이대지도 못할 만큼 미대생들은 딴 세계 사람 같았다. 영화과나 연극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TV며 영화, CF에서 종종 보는 배우들이 학교를 돌아다니다니. 같은 학식을 먹고 도서관에서 마주친다니. 그들을 보다가 우리 문창과 학생들을 쳐다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옷이라도 좀 빨아 입고 다니든가. “쟤들은 남향 건물이라 그래.” 누군가 말했다. 정말 그런가? 해가 잘 드는 건물이어서 학생들도 예뻐 보이는 건가? 우리는 누렇게 뜬 얼굴을 그렇게 핑계 대며 연영과와 미대 학생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몇 달 전 중국 연안에 다녀왔다. 68학번 소설가 선생님과 한 학번 아래 후배와 함께였다. 연안에 있는 루쉰예술대학 옛터를 찾았다가 우리는 그만 까르르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여기, 우리 학교야? 우리 학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잖아!”
그도 그럴 것이, 루쉰예술대학에는 연극과, 미술과, 그리고 문예창작학과가 있었다. 혁명을 위해 가장 필요한 세 분야의 예술이었다는데, 정말 농담처럼 햇빛이 찬란하게 들어오는 미술과와 연극과 곁에 희한하게 어둡고 침침한 곳이 문창과 강의실이었다. 남향이니 북향이니 하는 차이도 없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문창과 강의실은 쿰쿰하기 짝이 없었다. “햇살이 달라! 미술과랑 연극과는 저렇게 쨍하고 예쁜데, 여기는 왜 이래?” 우리는 그것만 우스웠다. 세계를 막론하고 글을 쓴다는 건 다 이런 건가. 혼자서 머리를 처박고 펜에 잉크를 찍어 원고지를 채웠을 중국의 스무 살 청년들이 떠올라 우리는 뭔가 마음 한편이 찡했고, 가여웠고, 또 부러웠다. 혁명을 하겠다고,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이 강의실에 처박혔을 청년들.
돌이켜 보면 나의 스무 살도 얼마나 비장했던지. 동기의 가벼운 소설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더 치밀하지 않고, 더 치열하지 않은 그들의 시와 소설을 원망했던 그 시절 내 허세는 이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그 시절의 내 허세와 오만을 기억한다면, 부디 잊어주길 바라지만.
루쉰예술대학의 낡은 책상과 의자, 높은 천장과 문고리들을 우리는 천천히 만져보았다. 1930년대에 이곳에서 공부한 청춘들은 훗날 어떤 작가가 되었을까. “우리, 여기 오길 잘했다. 그치?” 나는 후배에게 속살거렸다. “저, 지금 우리 학교 온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해요.” 나 못지않은 후배였다. 68학번 선배님과 우리는 나란히 강의실에 앉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우리는 여기 졸업생들보다 훨씬 행복했지. 얘들은 혁명을 위해 썼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잖아. 목적이 있는 예술은 벌써 예술이 아니야.” 나는 선배님의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좋았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던 학생 시절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연안에 다녀온 뒤 한참 그곳을 곱씹었다. 내가 1930년대를 살았다면, 그저 평범하게 농부의 딸쯤으로 태어났더라면, 아마 나는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징징 울며, 예술대학에 보내달라고 가난한 부모를 졸랐겠지. 그 학교를 못 다닐 바에야 차라리 굶어 죽어버리겠다며 몇 날 며칠을 통곡했겠지. 그러고서 기어이 입학했다면, 학교 교문 앞에서, 강의실 앞에서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햇살밥 아래서 얼마나 신이 났을까? 철필 두 자루 주머니에 넣고 강의실로 뛰어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소설을 썼을까? 나는 그런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한글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 마음 그대로, 2026년 서울에서도 소설을 쓸 수 있는지 보려고 말이다.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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