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NATO)의 주요국 여론이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의 한 매체와 영국의 한 여론조사 회사가 공동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5개국 국민 각 2천명 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미국을 제외한 4개국에서 공통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통치하는 미국’보다 중국을 의지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게 나왔다. 나토가 공산권 국가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집단 안전보장 기구라는 점에서 보면 이번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주요 동맹국의 신뢰를 잃은 것은 트럼프 탓이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리더로서 갖춰야 할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이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3천 명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재미 삼아 몇 번 더 공격할 수 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백악관이 얼마 전 이번 전쟁을 비디오 게임이나 할리우드 영화에 비유하는 홍보 영상을 올렸다가 비난을 산 것과 문제의 이 발언을 잇대어 생각하면 그야말로 끔찍하다. 트럼프는 또 미군의 오폭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란 초등학교 폭격 사건과 관련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고 발뺌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쟁 상황을 희화화해서도,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트럼프는 엊그제 한국,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이들 5개국은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가 꺼내 든 관세 카드에 대응하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는 아예 전쟁에 직접 참여해 달라는 요구까지 하다니 당사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다.

이쯤 되면 트럼프의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 세계의 깡패나 다름없다. 동맹국을 위협하고 호주머니를 터는 게 깡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트럼프는 세계의 골칫덩어리를 넘어 공포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 대세 시대인 요즘 인공지능 공포증을 일컫는 ‘AI phobia’라는 말이 생겼다는데 앞으로 2~3년은 트럼프 공포증, ‘트럼포비아(Trumphobia)’에 시달리는 사람이 생길 것만 같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