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강, 고향 인천 서구서 50주기 특별전
뇌출혈 후유증 이겨내고 왼손 서법 완성
부드럽고 굳세며 원숙·고졸미 글씨체 평가
지난주 검여 유희강의 작품을 다시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인천서구문화재단이 마련한 ‘검여 서거 50주기 특별전’ 덕분이다. 서구문화회관 전시장에 성균관대학교가 소장한 행서 작품 ‘독산해경(讀山海經)’, ‘두보시 백부행(杜甫詩白鳧行)’을 비롯한 40여 점이 가득 걸렸다. 이번 특별전은 2006년의 ‘검여 서거 30주기 특별전’ 이후 20년 만의 큰 전시인데다 그가 태어난 고향인 서구에서 열려 더 뜻깊다.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1976)은 인천 서구 시천동 출신의 서예가로, 중국 강유위를 매개로 북위비(北魏碑) 계열의 서법을 익혀 독창적인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한국 현대 서예사를 개척한 거장이다. 검여가 서예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의 나이 마흔넷 무렵, 1953년 국전에 ‘독서운생벽’이 입선한 이후였다. 그는 해방 이전 8년 동안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여러 도시에 머물며 문필가로 활동하는 한편, 틈틈이 서화와 회화·금석문 연구 등 다양한 예술 영역을 익혔다. 귀국 후에도 한동안은 서예보다 서양화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가 서예가로서의 지위를 굳힌 것은 1955년 제4회 국전에 서예 ‘칠언대련’을 출품해 특선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검여는 또한 생존과 예술의 위기를 모두 이겨낸 강골의 예술가였다. 1968년 그의 글씨가 거의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그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몇 달 뒤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후유증으로 오른쪽 반신마비와 언어장애가 와서 예술활동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절망의 한가운데서 그는 마침내 왼손으로 붓을 잡고 다시 글씨를 시도했다.
서예가의 손은 오랜 수련 속에서 법도와 리듬, 필압과 속도, 멈춤과 이어짐의 감각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체적 기관이다. 고전 비첩(碑帖)의 법을 연구하고 필획을 반복 연마해 손에 익힌다음 이를 견고한 서체로 고정해 가는 과정은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훈련이다. 검여는 생전에 “중봉의 완벽한 획을 그을 수 있으려면 좌선의 고난을 참고 이길 수 있는 수만 번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왼손 서법은 전례가 아예 없다. 서예의 서체와 서법은 오른손 글씨를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한자의 가로획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어야 하고 좌우 구조의 글자는 왼쪽 부수를 먼저 쓰고 오른쪽 부수를 나중에 써야 하는데, 이때 붓이 나아갈 방향을 왼손이 가리게 된다. 또 왼손으로는 파임과 갈고리, 방필처럼 예리한 필획을 표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검여는 왼손으로 붓을 잡은 지 3개월 만에 기적을 만들어냈다. 1969년 6월 왼손으로 첫 작품을 써서 출품한 것이다.
그의 좌수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굳세며 원숙미와 고졸미를 함께 보여 주는 글씨체로 평가된다. 그는 왼손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서예가 임창순은 검여의 좌수서에 대해 우수서 시기에 간혹 드러나던 객기가 사라지고 순수하고 고졸한 품격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날카로움과 기교의 과시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담박한 품격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검여는 좌수서에 이르러 자신의 서예미학, 곧 ‘칼처럼 날카로운 검여(劍如), 돌처럼 단단한 석여(石如), 박처럼 둥근 표여(瓢如)’가 어우러진 삼여(三如)의 경지를 비로소 성취했다고 할 수 있다.
검여는 1976년 평양의 산수와 풍류를 담은 총 3천24자의 대작 ‘관서악부’를 쓰는데 매진하다 서거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좌수서는 서예사의 빛나는 장면이면서 또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글씨는 마음으로 쓴다고 하여 예로부터 ‘심서(心書)’라 일렀다. 그러나 그 마음은 몸 바깥에 존재하는 순수 정신이 아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몸을 가까스로 추슬러야 했던 마음, 쓸 수 없게 된 오른손에 절망하면서도 서툰 왼손에 붓을 쥐게 하고 함께 일어섰던 정신, 바로 ‘온몸’이었다. 검여의 좌수서는 장애 극복의 서사를 넘어 예술과 예술행위란 존재 전체를 걸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임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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